1
월 마리아 함락
Season 1 초반
벽 안의 평화와 에렌의 갈망
이야기는 삼중의 거대한 성벽 — 최외곽의 월 마리아, 그 안쪽의 월 로제, 가장 안쪽의 월 시나 — 안에 갇힌 채 백여 년의 평화를 누려 온 인류의 세계에서 시작된다. 사람을 오직 잡아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인(巨人)들이 성벽 밖을 배회한 지 오래고, 벽 안의 사람들은 그 벽이 영원히 자신들을 지켜 주리라 믿으며 좁은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월 마리아 남쪽으로 돌출된 시가나 구(시간시나 구)는 이 폐쇄된 세계의 변방으로, 주인공 소년 에렌 예거가 어머니 카를라, 아버지이자 마을 의사인 그리샤와 함께 사는 곳이다. 이 첫 번째 막은 그 평범한 일상이 단 하루 만에 잿더미가 되는 파국의 기록이자, 뒤이어 펼쳐질 모든 비극의 씨앗이 심어지는 서막이다.
서두는 의도적으로 조용하다. 에렌은 조사병단(調査兵團) — 성벽 밖으로 나가 거인과 싸우고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아 사람들에게 조롱받는 부대 — 의 원정대가 문을 열고 귀환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소년의 눈에 조사병단은 벽 너머의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영웅이지만, 어른들에게는 세금을 축내며 개죽음을 당하는 미련한 자들일 뿐이다. 이 대비 속에서 에렌의 성격이 처음 드러난다. 그는 벽 안의 안온한 삶을 '가축의 삶'이라 여기며 답답해하고, 벽 밖의 세계를 갈망한다. 소꿉친구 아르민 알레르토는 이 갈망을 함께 키워 주는 존재다. 아르민의 할아버지가 몰래 물려준, 벽 밖 세계 — 불타는 물, 얼음의 대지, 모래의 벌판, 그리고 소금물로 이루어진 끝없는 '바다' — 를 묘사한 금서(禁書)는 두 소년의 마음에 '자유'라는 불씨를 심는다. 벽 밖을 입에 담는 것조차 불경으로 여겨져 아르민이 또래에게 얻어맞는 세계에서, 에렌은 늘 그를 감싸고, 언젠가 함께 바다를 보러 가자고 약속한다. 이 '바다에 대한 동경'은 이 막에서 그저 소년들의 순진한 꿈처럼 보이지만, 훗날 수십 권에 걸쳐 회수되는 이 작품 최대의 복선 중 하나가 된다.
미카사, 붉은 목도리로 연결된 운명
에렌 곁에는 또 한 명, 미카사 아커만이 있다. 이 막은 미카사가 왜 에렌의 그림자처럼 그를 지키려 하는지를 회상으로 보여 준다. 원래 산속에서 동양계 부모와 살던 미카사는, 동양인이라는 희귀성을 노린 인신매매단의 습격으로 눈앞에서 부모를 잃고 납치당한다. 왕진을 왔다가 참극의 현장을 발견한 그리샤가 헌병을 부르러 간 사이, 아버지의 만류를 어긴 어린 에렌이 홀로 은신처로 뛰어들어 범인들을 속이고 찔러 죽이며 미카사를 구한다. 마지막 한 명에게 목이 졸려 죽을 위기에서, 에렌은 미카사에게 '싸워라,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외치고, 각성한 미카사가 스스로 범인을 죽인다. 갈 곳 없이 떨고 있는 소녀에게 에렌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붉은 목도리를 감아 주며 '집에 가자'고 말한다. 이 목도리는 미카사에게 '따뜻함'과 '살아갈 이유' 그 자체가 되고, 그가 이후 작품 내내 목도리를 두르는 이유이자 두 사람 관계의 핵심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그날 이후 미카사는 예거 가에 거두어져 남매처럼 자라며, '에렌을 지킨다'는 것을 자신의 세계로 삼게 된다.
초대형 거인의 출현과 절대 안전의 신화 붕괴
그리고 운명의 날, 845년이 온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시가나 구의 하늘 위로, 성벽(50미터)을 훌쩍 넘겨다보는 붉은 근육의 얼굴 — 초대형 거인이 번개 같은 증기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다. 60미터에 달하는 이 거체는 단 한 번의 발길질로 시가나 구의 남쪽 성문을 걷어차 부순다. 그 순간 튀어나온 거대한 바윗덩어리들이 마을로 쏟아지고, 부서진 문틈으로 거인들이 벽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백 년간 단 한 번도 뚫린 적 없던 벽의 '절대 안전'이라는 신화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초대형 거인은 파괴만을 남긴 채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진다. 이 정체불명의 등장과 소멸 자체가 거대한 물음표이자, 훗날 '누가, 왜 벽을 부수었는가'라는 이야기 전체의 추진 동력이 된다.
어머니의 죽음과 에렌의 원초적 증오의 탄생
혼란의 한복판에서 에렌과 미카사가 집으로 달려갔을 때, 예거 가는 이미 무너진 잔해에 짓눌려 있고 어머니 카를라의 두 다리가 그 아래 깔려 있다. 두 아이는 필사적으로 기둥을 들어 올리려 하지만 어린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거인들이 골목마다 사람을 집어삼키며 다가오는 가운데, 카를라는 자신을 두고 도망치라고 절규한다. 마침 마을의 주둔병단 소속 병사 한네스가 달려와 '내가 거인을 죽이고 셋 다 구하겠다'며 큰소리치지만, 성큼성큼 다가오는 거인의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그는 검을 뽑지도 못하고 얼어붕는다. 이성을 잃은 한네스는 결국 아이들을 붙잡아 안고 도망친다. 그 등 뒤로, 잔해에 깔린 카를라가 다가온 거인의 손아귀에 붙들려 몸통이 꺾이고, 마지막으로 '살아야 한다'는 눈빛을 아이들에게 던진 뒤 그대로 씹어 삼켜진다. 에렌은 어머니가 자신의 눈앞에서 먹히는 광경을 온전히 목격한다. 이 장면은 소년 에렌의 내면을 영원히 바꿔 놓는다. 무력함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 그리고 '이 세상의 거인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절멸시키겠다'는, 이후 그의 모든 행동을 움직이는 원초적 증오가 이때 태어난다.
갑옷 거인의 등장과 거대한 의도의 암시
한편 이 재앙에는 두 번째 얼굴이 있다. 초대형 거인의 침입만으로는 벽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없었다. 이어서 온몸이 단단한 갑옷 같은 경질 피부로 뒤덮인 갑옷 거인이 나타나, 주둔병단의 포격을 아랑곳하지 않고 돌진해 시가나 구의 안쪽 성문(월 마리아 본체로 통하는 문)까지 들이받아 뚫어 버린다. 이로써 남쪽으로 튀어나온 시가나 구뿐 아니라 월 마리아 방어선 전체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최외곽 성벽 안에서 살던 방대한 인구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는다. 초대형 거인과 갑옷 거인이라는 '지능을 가진 특별한 거인'들의 존재는, 이 세계의 거인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어떤 의도와 배후를 지녔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암시를 남긴다. 이 둘의 정체는 오랫동안 감춰진 채, 훗날 밝혀질 때 관객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기는 반전의 씨앗으로 이 막에 심긴다.
난민 사태와 인류 내부의 또 다른 비극
생존자들은 배를 타고 월 마리아를 버린 채 안쪽의 월 로제로 피난한다. 벽 안 인류가 관할하던 영토의 상당 부분이 하루 만에 거인의 소굴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규모 난민 사태는 곧바로 인류 내부의 또 다른 비극을 부른다. 갑자기 불어난 피난민을 먹여 살릴 식량이 부족해지자, 위정자들은 이듬해 약 20만 명의 난민을 '땅을 되찾는다'는 명목으로 월 마리아 탈환 작전에 강제 동원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입 수를 줄이기 위한 방편에 가까웠고, 훈련도 장비도 없이 내몰린 그들 대부분이 거인에게 몰살당한다. 살아남아 돌아온 이는 극소수였다. 이 참혹한 사건은 벽 안 세계가 겪는 굶주림과 계급의 잔인함, 그리고 '인류의 진짜 적이 반드시 거인만은 아니다'라는 이 작품의 어두운 주제를 일찌감치 드러낸다. 에렌과 미카사, 아르민은 이 피난과 굶주림의 참상을 겪으며, 그리고 눈앞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냉대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급격히 성숙한다.
그리샤의 실종과 지하실의 열쇠가 남긴 수수께끼
이 막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결정적 복선이 하나 더 숨어 있다. 바로 에렌의 아버지 그리샤의 존재다. 시가나 구가 함락되던 혼란 속에서 그리샤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그는 사라지기 직전 에렌에게 자택 지하실의 열쇠를 남기며, 언젠가 그곳에 가면 '이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건넨다. 겉보기에는 아들에게 남긴 유언 같은 당부이지만, 이 지하실과 열쇠는 앞으로 수십 권 동안 인류가 목숨을 걸고 향해 갈 최종 목표가 된다. 그리샤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그날 무슨 일을 벌였는지는 이 시점에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어, 관객에게 '이 온화한 시골 의사에게는 무언가 감춰진 과거가 있다'는 강렬한 의문만을 남긴다. 그의 실종과 열쇠, 그리고 그리샤와 에렌 사이에 그날 실제로 벌어진 일은 이 작품이 뒤에서 회수하는 가장 거대한 반전의 출발점이다.
동기의 뿌리와 다음 막으로의 바통 넘김
서사 구조상 이 첫 번째 막은 발단이자 모든 동기의 뿌리다. 어머니의 죽음은 에렌에게 '거인 절멸'이라는 목표를, 인신매매 사건과 목도리는 미카사에게 '에렌 수호'라는 삶의 축을, 금서와 바다는 아르민에게 '바깥 세계에 대한 앎'이라는 갈망을 각각 심어 준다. 세 소년소녀는 어머니를 잃은 폐허 위에서, 그리고 무력함에 대한 뼈저린 자각 위에서, 함께 거인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이 결심은 곧 다음 막 — 이들이 훈련병단(제104기)에 입단해 입체기동장치를 익히고 전사로 단련되는 과정, 그리고 그 훈련의 끝에서 다시 한번 성벽이 뚫리는 트로스트 구 공방전 — 으로 곧장 이어진다. 즉 이 막은 '왜 그들이 싸우는가'를 관객의 가슴에 각인시킨 뒤, '그들이 어떻게 싸우게 되는가'로 서사의 바통을 넘긴다. 평화로운 일상의 붕괴, 압도적 폭력 앞의 무력함, 사랑하는 이의 상실, 그리고 그 상실을 증오와 결의로 전환하는 소년의 눈빛 — 「진격의 거인」이라는 대서사시의 모든 것은 바로 이 월 마리아 함락의 하루에서 시작된다.
2
트로스트 구 공방과 에렌의 비밀
Season 1 중반
초대형 거인의 재등장과 신병들의 첫 실전
월 마리아가 함락되고 5년이 흐른 서기 850년, 에렌 예거와 미카사 아커만, 아르민 알레르토를 비롯한 제104기 훈련병단은 마침내 졸업을 맞이한다. 성적 상위 10위 안에 든 에렌은 원래 헌병단(내지에서 왕정을 호위하는 안전한 병과)에 갈 자격을 얻었음에도, 거인을 한 마리라도 더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조사병단 지원을 결심하고 있었다. 졸업식 전날 밤 동기들이 저마다의 진로와 야망을 이야기하던 평온한 밤은, 이 막이 무엇을 무너뜨릴지 알려주는 마지막 정적이었다. 바로 그 다음 날, 월 로제 남단의 최전선 도시 트로스트 구에서 고정포를 정비하던 에렌의 눈앞에 5년 전 월 마리아를 부순 그 초대형 거인이 번개처럼 다시 나타난다. 초대형 거인은 성벽을 걷어차 외벽 문을 파괴하고, 에렌이 입체기동장치로 접근하기도 전에 거대한 수증기 폭발과 함께 홀연히 사라진다. 뚫린 구멍으로 다시 거인들이 밀려들면서, 갓 졸업한 신병들은 훈련이 아닌 진짜 지옥에 내던져진다.
이 막의 발단은 순수한 재난과 공포다. 트로스트 구의 주둔병단과 104기 졸업생이 합동으로 거인 토벌에 나서지만, 실전을 처음 겪는 신병들은 눈앞에서 동기들이 물어뜯기고 씹혀 죽는 광경에 정신이 무너진다. 에렌이 속한 분대(34분대) 역시 순식간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다.
에렌의 죽음과 아버지의 열쇠
절정을 향해 치닫는 첫 전환점은 에렌 자신의 죽음이다. 거인에게 다리를 물어뜯긴 아르민이 또 다른 거인의 입안으로 삼켜지려는 순간, 에렌은 이미 한쪽 다리를 잃은 몸으로 달려들어 아르민을 거인의 입에서 억지로 밀어내 구해낸다. 대신 에렌 자신이 거인에게 붙잡혀, 자기를 삼킨 거인의 이빨에 왼팔까지 잃은 채 그 목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소꿉친구를 살리고 자신은 잡아먹히는 이 장면은, '주요 인물조차 예외 없이 죽는다'는 이 작품 특유의 냉혹함을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동시에, 에렌이라는 인물이 자기 목숨보다 '함께 바깥세상을 보자'던 약속을 앞세우는 존재임을 결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서 이 막의 핵심 비밀이 폭발한다. 거인의 뱃속, 죽음 직전의 어둠 속에서 에렌은 옷 밖으로 흘러나온 아버지 그리샤의 열쇠를 본다. 그 열쇠를 매개로, 5년 전 아버지가 자신에게 주사를 놓고 기억을 흐리게 만든 순간, 그리고 '지하실에 가면 거인을 없앨 모든 것이 있다'던 아버지의 말이 단편적으로 되살아난다.
진격의 거인으로의 각성
거인을 몰살하겠다는 불타는 증오와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극한에 다다른 순간, 에렌은 자신을 삼킨 거인의 몸을 안에서 찢고 15미터급 거인으로 각성한다. 살의에 찬 에렌의 거인은 다른 거인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죽이며 트로스트 구를 배회한다. 이 각성이야말로 이 막의 제목이 가리키는 '에렌의 비밀'이며, 인류를 잡아먹는 존재와 인류를 지키는 존재의 경계를 처음으로 허무는 사건이다. 훗날 밝혀지듯 그가 물려받은 것은 '진격의 거인'이며, 아버지의 주사·열쇠·지하실이라는 이 장면의 파편들은 시리즈 최후반의 세계 진실(마레, 시조의 거인, 그리샤의 과거)로 곧장 이어지는 최대 복선의 씨앗이다.
미카사와 아르민의 각성
인물들의 심리는 각성 이후 급격히 요동친다. 미카사는 에렌이 죽었다는 소식에 삶의 지주를 잃은 듯 무너져 자포자기에 가까운 상태에 빠지지만, 이내 '살아서 싼다'는 에렌이 심어준 신념을 스스로 되뇌며 다시 일어선다. 아르민은 두려움 앞에서 얼어붙던 자신을 뛰어넘어 이 막에서 결정적으로 각성하는 인물이다. 에렌의 거인이 트로스트 구를 헤집는 것을 목격한 아르민은, 이를 인류가 처음으로 손에 넣은 무기로 활용하자는 대담한 작전을 구상한다. 계획의 골자는 이렇다ㅡ에렌의 거인이 시가지 한복판에 놓인 거대한 바위를 들어 뚫린 남문을 틀어막고, 그동안 정예 소수가 에렌을 호위하며, 나머지 병력은 반대쪽 성벽 모퉁이로 거인들을 유인해 성벽 위 대포로 접촉을 최소화한 채 정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거인화한 에렌이 이성을 잃고 아군인 미카사에게까지 주먹을 휘두른다는 점이었다.
인간으로의 귀환과 인류 최초의 승리
작전의 절정에서 관계와 신념이 시험대에 오른다. 폭주하는 에렌 앞에서 미카사는 그의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동료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에렌의 얼굴에 매달려 그를 인간으로 되돌리려 시도한다. 신호탄으로 작전 실패를 감지한 아르민은 홀로 에렌의 거인 목덜미(우나지)를 갈라 그 안에 파묻힌 에렌에게 필사적으로 외친다ㅡ'바깥세상을 보고 싶다'던 어린 날의 꿈, 바다와 얼음과 불의 대지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정신을 붙든다. 그 말에 의지가 되살아난 에렌의 거인은 상처를 재생하고, 마침내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려 뚫린 문에 끼워 넣는다. 이 순간 트로스트 구 공방전은 인류가 거인에게서 처음으로 영토를 지켜낸 '인류 최초의 승리'로 기록된다. 도망치는 것 외에 방법을 몰랐던 인류가 처음으로 거인과 정면으로 맞서 이길 수 있음을 증명한, 자긍심과 희망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서사적 무게가 크다.
성벽 안의 배신자들
이 막에는 회수될 복선이 조용히 매설된다.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라이너 브라운, 베르톨트 후버, 아니 레온하트는 동기들과 함께 싸우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동기 마르코 보트를 붙잡아 입체기동장치를 빼앗고 거인의 먹이로 방치한다. 밝고 성실했던 마르코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당시엔 전장의 비극처럼 보이지만, 실은 성벽 안에 인간의 얼굴을 한 배신자가 숨어 있음을 알리는 첫 균열이며, 다음 막('여자형 거인과 성벽의 배신자')에서 폭로될 진실의 예고편이다. 한편 소극적이던 장(진)은 이 전장에서 자신의 지휘력과 리더십을 자각하고, 헌병단만을 바라보던 태도에서 벗어나 동료를 지키는 병사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정치적 갈등과 군법회의
각성한 에렌이 인간으로 돌아온 뒤, 이 막은 정치적 결말로 넘어간다. 거인이 인류를 위해 싸웠다는 소식은 성벽 안을 뒤흔든다. 벼랑 끝에서 주둔병단 장교(베르만/뵈르만)는 에렌을 즉결 처분하려 하지만, 아르민은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와 '병사들이 두 눈으로 에렌이 거인과 싸우는 것을, 거인이 그를 먹잇감으로 보는 것을 목격했다'며 그의 인간성을 변호한다. 나아가 인류를 위해 죽는 것이 명예라며, 죽을 때까지 에렌의 생존을 주장하겠다고 외친다. 여기에 남부 방위 총책임자 도트 픽시스 사령관이 등장해 아르민의 작전에 신뢰를 걸면서 국면이 뒤집힌다. 그러나 승리 이후에도 에렌의 신병 처분을 둘러싼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그가 사흘 만에 지하 감옥에서 깨어난 뒤, 헌병단은 위험분자로서 그를 해부·처형하려 하고 조사병단은 그의 힘을 인류 반격에 활용하려 한다. 이 대립은 곧이어 열리는 군법회의(리바이가 에렌을 걷어차 통제 가능함을 증명하고, 에르빈이 조사병단 인계를 제안하는 재판)로 이어지며, 에렌의 신병이 조사병단에 맡겨지는 다음 전개의 문턱을 연다.
거대한 반전과 미스터리의 확장
요컨대 이 두 번째 막은 앞 막('월 마리아 함락')이 심어 놓은 재난과 복수의 씨앗을, '에렌 자신이 거인'이라는 최대 반전으로 폭발시키는 서사의 결정적 변곡점이다. 첫 막이 인류가 일방적으로 잡아먹히는 절망을 그렸다면, 이 막은 그 절망 속에서 처음으로 반격의 실마리와 승리의 가능성을 손에 쥐게 한다. 동시에 에렌의 거인화·아버지의 열쇠와 지하실이라는 거대한 수수께끼를 던져, 이야기를 단순한 생존극에서 '세계의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로 확장시킨다. 마르코의 죽음이라는 조용한 복선과 함께, 이 막은 성벽 안의 적, 거인의 정체, 바깥세상의 존재라는 후속 서사 전체를 잉태한 채, 조사병단으로 향하는 에렌의 다음 걸음을 향해 문을 연다.
3
여자형 거인과 성벽의 배신자
Season 1 후반~Season 2
세계관을 뒤흔드는 결정적 전환점
이 세 번째 막은 『진격의 거인』이 단순한 생존극에서 벗어나 '적은 밖의 괴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었다'는 전율적인 방향으로 방향을 트는 결정적 전환점이다. 트로스트 구 공방(2막)에서 에렌 예거가 스스로 거인이 될 수 있음이 드러나 인류가 처음으로 반격의 실마리를 잡았다면, 이 막은 그 실마리를 쥐자마자 인류가 '적의 정체'라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린다. 이야기는 조사병단이 성벽 밖으로 나가는 제57회 벽외 조사에서 시작해, 여자형 거인이라는 지능형 적의 등장, 그 정체가 훈련병단 동기 아니 레온하트였다는 폭로, 그리고 시즌2로 넘어와 라이너 브라운과 베르톨트 후버라는 또 다른 배신자들의 정체 폭로와 유미르의 각성으로 이어진다. 관객이 함께 훈련받고 함께 울었던 얼굴들이 하나씩 '인류의 적'으로 돌아서는 이 잔혹한 구조가 이 막의 핵심이며, 이후 마레편으로 확장되는 세계관 반전의 토대가 여기서 놓인다.
제57회 벽외 조사와 에르빈의 함정
막의 문을 여는 것은 제57회 벽외 조사다. 에르빈 스미스 단장은 에렌의 거인화 능력을 이용해 월 마리아 탈환의 실마리를 잡고자, 조사병단 전군을 이끌고 성벽 밖으로 나선다. 그러나 에르빈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는 성벽 안에 '거인으로 변신할 수 있는 스파이'가 숨어 있으며, 그자가 이번 원정에서 에렌을 노릴 것이라 예측하고, 정보를 단계적으로 차단하는 '장거리 색적 진형'을 짜 배신자를 걸러내려 한 것이다. 병사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무슨 함정의 일부인지도 모른 채 넓게 퍼져 전진한다. 이 진형 자체가 에르빈이라는 인물의 냉철함과, 부하를 장기 말처럼 쓰면서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대의를 짊어진 지도자의 무게를 보여주는 장치다.
여자형 거인의 등장과 리바이 반의 전멸
원정이 시작되자마자 진형의 우익이 정체불명의 지능형 거인 한 기에게 순식간에 궤멸당한다. 이 거인은 여성의 골격을 가졌고, 무엇보다 다른 거인들과 달리 인간처럼 판단하고 격투 기술을 구사하며, 급소인 목덜미를 팔로 감싸 방어할 줄 안다. 바로 '여자형 거인'이다. 여자형 거인은 정확히 에렌이 있는 방향으로 진로를 틀며, 자신을 막아서는 병사들을 입체기동장치째 손으로 쳐 죽인다. 이 존재는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 에렌 말고도 지능을 가진 거인이 존재하며, 그것이 명백히 '누군가'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형 거인은 추격 도중 낙마한 아르민 알레르토를 발견하고 그의 두건을 들춰 얼굴을 확인하지만, 죽이지 않고 지나친다. 이 '죽이지 않은 순간'은 훗날 아르민이 그 거인의 정체를 추론하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 목표가 학살이 아니라 '에렌의 포획'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안의 인간이 완전히 냉혈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막의 첫 절정은 리바이의 특별작전반, 이른바 '리바이 반'의 전멸이다. 에렌은 페트라 라르, 오루오 보자드, 엘드 진, 군터 슐츠 등 조사병단 최정예로 구성된 리바이 반의 보호를 받으며 후방으로 후퇴하던 중이었다. 여자형 거인이 이들을 추격해오자, 리바이는 놀랍게도 '싸우지 말고 전속력으로 달아나라'고 명령한다. 에렌은 자신이 거인화해 싸워야 한다고 믿지만, 동료들의 판단을 믿고 인간의 몸으로 도주하기를 택한다. 그러나 여자형 거인은 먼저 입체기동장치와 칼로 군터를 기습해 죽이고, 이어 페트라를 나무에 발로 짓이겨 죽이며, 오루오는 발길질로, 엘드는 물어뜯어 죽인다. 최정예 넷이 순식간에 몰살당하는 이 장면은 이 작품 특유의 '주요 인물도 예외 없이 죽는' 냉혹함을 각인시킨다. 결국 페트라와 동료들이 목숨을 걸어 여자형 거인의 눈을 멀게 하고 팔을 잘라내는 데까지 성공하지만, 거인이 눈을 순식간에 재생하며 반격해 모두 스러진다. 뒤늦게 참극을 목격한 에렌은 분노와 자책 속에 거인화해 여자형 거인과 정면으로 격돌한다. 자신이 처음부터 거인이 되어 싸웠다면 동료들이 죽지 않았으리라는 죄책감이, 에렌이라는 인물이 평생 짊어질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예고한다.
에렌의 거인은 여자형 거인과 맹렬히 싸우지만, 상대의 격투 실력과 경화(硬化) 능력에 밀려 목덜미를 뜯길 위기에 처한다. 여자형 거인은 에렌을 삼켜 포획하는 데 성공하지만, 뒤늦게 도착한 리바이가 초인적인 기동으로 여자형 거인을 유린하고 미카사 아커만과 협공해 에렌을 되찾는다. 목표를 잃은 여자형 거인은 도주하고, 조사병단은 막대한 희생만 남긴 채 후퇴한다. 이 원정은 '실패'로 끝나지만, 에르빈은 성벽 안에 배신자가 있다는 확증과, 그 배신자가 지능형 거인이라는 사실을 확보한다. 무엇보다 이 참극은 '적은 성벽 밖 괴물'이라는 지금까지의 전제 자체가 허구일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심는다.
여자형 거인의 정체, 아니 레온하트의 폭로
막의 두 번째 절정은 여자형 거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이다. 성벽으로 돌아온 아르민은 원정 중 여자형 거인이 자신을 죽이지 않고 지나간 점, 그리고 그 거인이 훈련병 시절 특정 인물의 격투술과 닮은 점 등을 조합해, 그 정체가 다름 아닌 헌병단에 배속된 동기 아니 레온하트라고 추론한다. 아니는 냉소적이지만 어딘가 외로운 소녀였고, 에렌·아르민과도 훈련병 시절 나름의 유대가 있었다. 조사병단은 아니를 지하도로 유인해 사로잡는 함정을 짠다. 이것이 시즌1의 마지막 축인 '스토헤스 구 급습' 편이다. 아르민은 아니에게 '탈주한 동기를 지하도로 몰래 빼내주겠다'고 접근하지만, 아니는 지하도 입구에서 함정을 직감하고 멈춰 선다. 이때 아니와 아르민이 나누는 대화는 이 막에서 가장 아프게 남는 장면 중 하나다 — 아니는 아르민에게 '너는 착한 아이'라고 말하고, 아르민은 '착하기 때문에 남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도 그녀를 속이고 있음을 자백한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도 완전히 미워하지 못하는 이 관계는, 배신의 서사를 단순한 선악 대결이 아니라 인간적 비극으로 만든다.
결국 아니는 정체를 더 숨기지 못하고 자신의 손등을 물어 거인화하며, 도시 한복판에서 에렌의 거인과 격돌한다. 인구 밀집 지역에서 벌어진 이 전투로 백 명이 넘는 시민이 희생되고 스토헤스 구는 폐허가 된다. 아니는 에렌을 압도하다가도 결국 미카사와 에렌의 협공에 몰리고, 마침내 벽을 기어올라 도주하려 한다. 그러나 심문을 통해 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우려한 아니는, 사로잡히기 직전 스스로 몸을 단단한 결정(結晶)으로 감싸 혼수상태에 빠져버린다. 인류는 처음으로 지능형 거인을 '생포'했지만, 정작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는 결정 덩어리만을 손에 쥔 셈이다. 에르빈은 도시를 초토화시킨 책임을 추궁받으면서도, 이 포획이 거인의 정체에 한 발 다가서게 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전투 과정에서 무너진 월 시나(가장 안쪽 성벽)의 갈라진 틈 사이로, 성벽 안에 초대형 거인의 얼굴이 박혀 있는 것이 드러난다. '성벽 자체가 거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 충격적 사실은, 인류가 발 딛고 선 세계의 근간이 거짓 위에 세워졌음을 암시하며 시즌1을 닫는다.
시즌2: 월 로제의 비밀과 짐승 거인의 등장
시즌2로 넘어오면 무대는 다시 성벽 안쪽, 이번엔 월 로제로 옮겨간다(원작 '거인 격돌' 편, 만화 35~51화). 이야기는 성벽에 다시 구멍이 뚫려 거인이 침입했다는 급보로 시작한다. 그런데 정찰에 나선 병사들은 어디에서도 성벽이 뚫린 흔적을 찾지 못한다. 즉 거인들이 '구멍'이 아니라 다른 경로로 성벽 안에 들어왔다는 뜻이며, 이는 성벽 안에 여전히 거인화 능력자가 숨어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조사병단은 흩어져 주민 대피와 정찰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유미르, 크리스타 렌츠, 코니 스프링거, 라이너, 베르톨트 등이 각자의 위기에 직면한다. 특히 코니는 자신의 고향 마을이 폐허가 된 것을 발견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사라졌고 코니의 집 위에는 팔다리가 없는 기괴한 거인 한 기가 얹혀 있었다. 이 거인이 '어서 와'라는 듯한 말을 흘리는 정황은, 마을 주민들이 거인으로 변해버렸을지 모른다는 끔찍한 복선을 깐다(이 떡밥은 훨씬 뒤에 회수된다).
시즌2 전반부의 절정은 '우트가르드 성' 공방이다. 유미르, 크리스타, 코니 등 몇몇 병사가 버려진 우트가르드 성에 고립되어 밤새 거인 무리에게 포위당한다. 이때 성벽 위로 원숭이를 닮은 '짐승 거인'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짐승 거인은 지능이 매우 높아 인간의 말을 하고 거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성벽 돌을 뜯어 성으로 투척하는 등 지금까지의 어떤 거인과도 다른 위협을 보인다. 이 새로운 존재의 등장은 '적의 세계'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크고 조직적임을 예고하는 장치다. 절체절명의 순간, 유미르는 크리스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거인화한다 — 그녀 역시 거인화 능력을 지닌 '악 거인'의 계승자였던 것이다. 유미르는 성탑에서 뛰어내려 거인 무리를 격퇴하며 동료들을 구하지만, 힘을 소진해 인간 형태로 잔해 속에 쓰러진다. 이 순간, 그동안 가련하고 신앙심 깊은 소녀로 알려졌던 크리스타가 '내 진짜 이름은 히스토리아'라고 밝히는 장면이 이어진다. 유미르 앞에서만 진짜 자신을 드러내는 이 고백은, 두 소녀의 애틋한 관계와 함께 히스토리아라는 인물에 얽힌 또 다른 비밀(진짜 왕가의 혈통)을 예고하며 다음 막인 왕정 편으로 실을 잇는다.
라이너와 베르톨트의 정체 폭로
그리고 이 막 전체의 가장 거대한 폭탄이 터진다. 우트가르드 전투 이후, 라이너 브라운은 부상당한 몸으로 에렌과 함께 앉아 쉬던 중,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베르톨트에게 '이제 슬슬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 '5년 전 성벽을 부순 것은 우리다. 나는 갑옷 거인이고, 베르톨트는 초대형 거인이다'라고 고백한다. 시즌1 첫 장면에서 월 마리아를 파괴하고 인류의 지옥을 시작한 두 거인이, 다름 아닌 에렌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훈련하며 목숨을 걸고 싸워온 동기였던 것이다. 이 폭로가 특히 잔혹한 이유는 그 연출 방식에 있다. 세계를 뒤엎을 만한 진실이 웅장한 회상이나 극적인 정적 없이, 다른 인물들의 대사 사이에 파묻혀 지나가듯 툭 던져진다. 라이너 본인조차 오랜 이중생활에 지쳐, '전사'로서의 자신과 '병사'로서의 자신 사이에서 인격이 분열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무심함이었다. 성벽 안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이, 인류를 절멸시키러 온 '전사'라는 본래 임무가 죄책감에 눌려 '벽 안 사람들을 지키는 병사'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인격 분열은 라이너라는 인물을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작품 전체에서 가장 비극적인 존재 중 하나로 만든다.
라이너 탈환과 유미르의 선택
뒤늦게 사태를 깨달은 미카사가 두 사람을 베려 하지만, 라이너와 베르톨트는 각각 갑옷 거인과 초대형 거인으로 변신하며 에렌과 유미르를 붙잡아 성벽 밖으로 달아난다. 배신감에 폭발한 에렌은 거인화해 라이너의 갑옷 거인과 격투를 벌인다. 조사병단은 필사적으로 추격하고, 리바이 반의 전멸에 이어 또다시 많은 병사가 이 추격전에서 목숨을 잃는다. 유미르는 크리스타(히스토리아)와 함께 성벽 밖의 자유를 택할지, 아니면 자신을 나락에서 구해준 라이너·베르톨트 쪽으로 돌아설지 사이에서 흔들린다. 여기서 유미르의 처절한 과거가 조명된다 — 그녀는 본래 마레라는 나라에서 이름조차 없던 엘디아인 부랑아였고, 어느 사교(邪敎) 집단에 이용당해 '유미르'라는 이름을 얻었다가, 집단이 적발되자 죄를 뒤집어쓰고 파라디 섬으로 추방되어 무지성 거인으로 변해버렸다. 그 뒤 약 60년을 아무 기억도 의식도 없이 벽 밖을 떠도는 '끝나지 않는 악몽'을 살았고, 우연히 마레의 전사 마르셀을 잡아먹으며 인간의 모습과 악 거인의 힘을 되찾은 것이다. 그렇기에 유미르에게 라이너 일행은 자신을 악몽에서 깨워준 존재이자 동시에 자신을 이 지옥에 빠뜨린 원흉의 후예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추격전의 마지막에서 에렌은 마레 전사들에게 다시 붙잡혀 절체절명에 몰리고, 에르빈은 인근 숲의 거인 무리를 미끼로 유인해 라이너·베르톨트를 습격하는 도박을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에르빈은 팔 한쪽을 거인에게 뜯기는 큰 부상을 입으면서도 지휘를 이어간다. 궁지에 몰린 라이너와 베르톨트가 거인 떼에 잡아먹힐 위기에 처하자, 자유를 향해 떠나려던 유미르는 결국 히스토리아에게 사과하고 발길을 돌려 두 사람을 구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바보'라 자책하면서도,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내가 선물이 되어주겠다'며 라이너 일행과 함께 마레 쪽으로 넘어가기를 택한다. 만약 그들이 성벽을 부수러 오지 않았다면 자신은 악몽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으리라는, 원망과 감사가 뒤엉킨 복잡한 심경이 그 선택에 담겨 있다. 한편 에렌은 마지막 순간, 자신의 손을 물어 근처의 무지성 거인들을 지배하는 '좌표(座標)'의 힘 — 훗날 '시조 거인'의 능력으로 밝혀지는 힘 — 을 무의식중에 발동해 거인 떼를 초대형 거인에게 몰아붙이고, 그 틈에 미카사와 리바이 등에게 구출된다. 라이너와 베르톨트, 유미르는 에렌 탈환에 실패한 채 물러나고, 조사병단은 또 한 번 막대한 피를 흘린 끝에 에렌을 되찾아 성벽 안으로 귀환한다.
거인에서 전쟁으로: 서사의 격상
서사적으로 이 막은 『진격의 거인』의 '지도(地圖) 전체를 다시 그리는' 구간이다. 1·2막이 '거인이라는 재앙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싸우고 성장하는가'를 물었다면, 이 막은 '그 재앙을 누가, 왜 일으켰는가'를 묻기 시작한다. 여자형 거인 아니, 갑옷 거인 라이너, 초대형 거인 베르톨트가 모두 에렌의 동기였다는 사실은, '적은 성벽 밖의 짐승'이라는 세계관을 정면으로 무너뜨린다. 적에게도 이름과 얼굴과 사연이 있고, 그들 역시 자신들의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있으며,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피해자'일 수 있다는 도덕적 회색지대가 이 지점에서 열린다. 이는 곧 이 작품이 괴물 퇴치극에서 전쟁·역사·민족의 비극을 다루는 서사로 격상되는 결정적 도약이다.
복선의 관점에서도 이 막은 회수와 배치가 촘촘하다. 시즌1 첫 화의 초대형·갑옷 거인의 정체가 여기서 회수되고, 아니가 아르민을 죽이지 않은 사소한 행동이 정체 추론의 열쇠로 회수되며, 스토헤스 전투에서 드러난 '성벽 속 거인'은 앞으로 밝혀질 세계의 진실(성벽을 이루는 초대형 거인들, 즉 '땅울림'의 원천)의 첫 단서로 심긴다. 동시에 짐승 거인, 좌표의 힘, 유미르의 마레 출신 과거, 코니 마을의 거인화된 주민, 히스토리아의 숨겨진 혈통 같은 무수한 새 떡밥이 이 막에서 뿌려져 다음 막들로 실을 잇는다. 요컨대 이 세 번째 막은 앞 막의 '반격의 희망'을 배신으로 뒤집고, 다음 막인 왕정 편(성벽 내부의 권력과 진짜 왕가의 비밀)과 시가나 구 탈환·지하실의 진실로 나아가는 다리를 놓는, 서사 전체의 무게중심이 옮겨 앉는 결정적 전환의 막이다.
4
왕정 편과 인류의 실체
Season 3 Part 1
왕정의 음모, 그리고 벽 안의 진짜 적
「왕정 편(반란 편, The Uprising)」은 「진격의 거인」이 그때까지 쌓아온 '인류 대 거인'이라는 대결 구도를 안쪽으로 뒤집는 전환점이다. 시가나 구의 공방과 라이너·베르톨트의 정체 폭로(3막)를 통해 '벽 안에도 인간의 얼굴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 이 막의 적은 더 이상 벽 밖에서 걸어오지 않는다. 적은 벽 안, 바로 인류를 다스려 온 왕정 그 자체다. 3기 파트1(38~49화)이 다루는 이 이야기는 거인 한 마리 나오지 않는 화가 여러 편 이어지는데도, 시리즈에서 가장 밀도 높은 정치 스릴러이자 인물극으로 꼽힌다. 조사병단은 처음으로 거인이 아니라 같은 인간을 적으로 삼아 싸워야 하며, 그 과정에서 세계의 진실에 다가갈 '권력'을 손에 넣는다.
발단은 조용한 산장에서 시작된다. 앞 막에서 우트가르드 성 사건과 라이너·베르톨트의 정체가 드러나며 조사병단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에렌과 크리스타(히스토리아)를 왕도의 손이 닿지 않는 외딴 산장으로 옮겨 한지 조에가 에렌의 거인화 능력을 조심스레 실험한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는다. 벽의 정체를 알고 있던 벽교(월교)의 사제 닉이 헌병단 제1내무반(중앙 헌병단)에 의해 잔혹하게 고문당해 살해된 채 발견된다. 리바이는 그 수법에서 정부가 조사병단을, 그리고 벽과 거인에 관한 비밀을 알아버린 이들을 하나씩 지우려 한다는 것을 직감한다. 즉 이 막의 대립은 '누가 벽 안 세계의 진실을 통제하는가'라는 문제로 압축된다. 그리고 그 진실을 감추려는 손의 정점에 왕정과 그 뒤에서 실권을 쥔 귀족 가문이 있다.
케니 아커만, 왕도의 거리에서 인간을 사냥하다
음모의 첫 노림수는 납치다. 왕정은 정식 절차를 가장해 에렌과 히스토리아의 신병을 조사병단에서 강제로 빼앗으려 한다. 여기서 이 막의 최대 신캐릭터, 케니 아커만이 등장한다. '찢어발기는 케니'라는 별명으로 지하가에 전설처럼 회자되던 살인귀이자, 지금은 중앙 헌병단 대장 자격으로 왕정의 더러운 일을 도맡는 자다. 케니와 그 부하들(트라우테, 이자벨 계열이 아닌 별개의 대살인 부대)은 왕도의 거리에서 리바이 반을 상대로 입체기동장치를 이용한 시가전을 벌인다. 이 전투는 시리즈 최초로 인간이 입체기동으로 인간을 사냥하는 장면을 정면으로 그려낸다. 리바이의 반원들 — 에르드, 군터, 페트라 같은 옛 정예는 이미 여자형 거인 편에서 전사했기에, 이 시점의 리바이 반은 에렌·미카사·아르민·장·코니·사샤 같은 104기 신병들이다. 이들은 처음으로 거인이 아니라 '같은 인간'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방아쇠를 당기는 손의 떨림과 살인의 무게를 통과하며 병사에서 전사로 다시 한 번 성장한다. 혼전 끝에 에렌과 히스토리아는 결국 로드 레이스 측에 넘어가지만, 조사병단은 케니 일당 중 한 명을 사로잡아 심문·고문하며 결정적 실마리를 얻는다. 히스토리아가 실은 벽 안 세계의 '진짜 왕가'인 레이스 가문의 유일한 정통 후계자이며, 그녀를 데려간 자가 실질적 지배자인 그녀의 아버지 로드 레이스라는 사실이다.
아커만 혈통의 비밀, 그리고 왕의 선택
이 막의 지적 스릴은 리바이와 그를 둘러싼 '아커만 혈통'의 비밀이 케니의 서사와 맞물리며 폭발한다. 케니 아커만은 리바이의 외삼촌이다. 지하가 창관에서 일하던 여동생 쿠체르 아커만을 찾아왔다가 그녀가 손님의 아이를 배어 죽은 것을 발견하고, 어머니의 시신 앞에 웅크린 어린 리바이를 거두어 싸우는 법만 가르친 뒤,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버린 인물이다. 이 냉혹한 뒷이야기는 리바이라는 캐릭터의 인간성을 처음으로 깊게 파고든다. 그리고 케니의 회상을 통해 아커만 일족이 왜 박해받았는지가 밝혀진다. 아커만 가문과 동양 일족(미카사의 어머니 쪽)은 시조의 거인이 지닌 기억 조작 능력에 면역이라는 특이 혈통이며, 그렇기에 왕에게 세뇌되지 않고 왕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져 숙청당해 왔다. 리바이와 미카사가 유독 강한 이유, 그리고 이들이 세계의 진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이유가 여기서 설명된다. 케니의 과거는 또한 레이스 가문과 얽힌다. 젊은 시절 케니는 우리 레이스를 암살하려다 실패하는데, 시조의 거인을 계승해 성인(聖人)처럼 자애로워진 우리는 오히려 선대 왕들이 아커만 일족에게 저지른 죄를 사과하며 박해를 멈추고 케니를 오른팔로 받아들인다. 우리와, 이후 프리다 레이스가 시조의 힘을 물려받은 뒤 선량하고 온화한 사람으로 변모하는 것을 지켜본 케니는, '신의 힘'을 손에 넣으면 자신도 그런 평온과 다정함을 알 수 있을까를 평생 갈망하게 된다. 이 갈망이 그를 왕정의 개로 만든 동기이자 최후의 열쇠가 된다.
지하 예배당, 초대 왕의 맹세와 벽의 진실
이 막의 심장부는 레이스 가문의 지하 예배당에서 드러나는 세계의 진실이다. 로드 레이스는 히스토리아 앞에서 레이스 가문이 진짜 왕가이며, 지금 왕좌에 앉은 프리츠 왕은 대외용 허수아비에 불과함을 밝힌다. 레이스 가문은 시조의 거인을 통해 '기억을 지우고 조작하는' 능력을 대대로 계승해 왔고, 초대 왕 카를 프리츠가 남긴 사상 — 이른바 '전쟁 포기의 맹세' — 에 얽매여 있다. 초대 왕은 벽 밖 세계에 대한 기억을 백성에게서 지우고 파라디 섬 안에 거인의 벽을 세워, 설령 벽이 공격받아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시조의 힘으로 보복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계승자에게 강제한다. 즉 왕가는 인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조용히 소멸당하는 것'을 신성한 사명으로 삼아 왔다. 이 충격적 진실 앞에서 히스토리아는 자신의 배다른 언니 프리다 레이스가 시조의 거인을 지녔었고, 5년 전 에렌의 아버지 그리샤 예거가 그 프리다를 잡아먹어 시조의 힘을 빼앗은 뒤 로드를 제외한 레이스 일족을 몰살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에렌이 아버지에게 주사를 맞고 거인화한 그 힘, 지하실의 비밀, 그리샤의 정체가 모두 이 지하 예배당에서 하나의 계보로 이어진다. 앞 막까지 흩어져 있던 복선 — 그리샤가 에렌에게 남긴 열쇠와 지하실, 크리스타가 감춰온 진짜 이름 히스토리아, 왕정이 왜 진실을 은폐하는가 — 이 이 막에서 굵게 회수된다.
히스토리아의 각성, 신을 거부하다
로드 레이스의 계획은 잔인하다. 그는 히스토리아에게 거인화 약물을 주사해 거인으로 만든 뒤 에렌을 잡아먹게 하여, 그리샤가 빼앗아 간 시조의 좌표 능력을 레이스 가문으로 되찾으려 한다. 사슬에 묶인 에렌은 자신이 어머니의 죽음을, 나아가 인류의 불행을 초래한 원흉일지 모른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스스로를 부정하는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여기서 이 막의 감정적 절정이자 히스토리아의 각성이 온다. 로드는 딸에게 '너는 신을 위해, 인류를 위해 존재를 삼켜야 한다'고 종용하지만, 히스토리아는 앞 막에서 유미르가 자신에게 남긴 말 — '가슴 펴고 살라'는 당부 — 를 떠올린다. 평생 존재를 부정당하고 남의 기대에 맞춰 '착한 크리스타'를 연기하며 살아온 소녀는 마침내 폭발한다. '신은 얼어 죽을 좋아하시네! 그럴듯한 거짓말을 지어내 사람들을 선동하고 도망치기나 하고! 더 이상 나는 나를 죽이며 살지 않아!' 그녀는 주사기를 부숴 버리고 아버지를 내던진다. 자신을 규정하려는 혈통과 신화, 아버지의 권위를 스스로 거부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크리스타 렌즈가 히스토리아 레이스로 다시 태어나는 지점이다.
로드의 괴물, 에르빈의 정변
부서진 주사기에서 흘러나온 척수액을 로드가 절망에 사로잡혀 핥는 순간, 이 막은 다시 거대한 물리적 위협으로 전환된다. 로드 레이스는 통제 없이 약물을 흡수해 지금껏 등장한 어떤 거인보다 거대한 — 초대형 거인의 두 배에 달하는,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기어 다니는 기형(奇型) 거인으로 변한다. 무너지는 예배당에서 히스토리아는 아버지의 야심 대신 에렌을 구하는 데 온 힘을 쏟아 사슬의 열쇠를 찾아 그를 풀어준다. 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눈앞의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움직이는 이 선택이, 앞으로 그녀가 어떤 통치자가 될지를 예고한다. 그사이 케니는 로드의 목에 칼을 밀어넣어 마지막 이익을 취하려 하지만, 히스토리아의 반역과 붕괴 속에서 계획은 어긋난다.
이 위기를 정치적 승리로 뒤집는 것이 에르빈 스미스의 냉철한 정변이다. 에르빈은 무너지는 왕정 앞에서 무혈에 가까운 쿠데타를 감행해, 현재의 프리츠 왕이 가짜임을 폭로하고 부패한 귀족 정부를 전복한다. 그리고 로드가 변한 초대형 기형 거인이 오르부드 구를 향해 기어가자, 에르빈은 논쟁적인 결단을 내린다. 주민을 피난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 — 왕정의 무능과 조사병단의 필요성을 세상에 각인시키기 위해, 그리고 히스토리아를 '거인을 쓰러뜨린 여왕'으로 세워 군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이 냉혹한 정치 계산은 자유를 위해 무엇까지 감수할 것인가라는 시리즈의 핵심 물음을 에르빈이라는 인물에 응축한다. 결전에서 조사병단은 에렌의 경화(硬化) 능력과 총력전으로 기형 거인의 폭발적 증기를 막아내고, 마지막 순간 히스토리아 본인이 입체기동으로 날아올라 아버지 로드의 목덜미를 베어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낸다. 신화와 혈통에 짓눌려 살던 소녀가, 자기 손으로 그 혈통의 저주를 끊어내는 이 마무리는 히스토리아 서사의 완결이자 정치적 정통성의 확보다.
케니의 유언, 노예로 살다 노예로 죽다
전투 뒤, 이 막은 조용하지만 깊은 인물의 죽음으로 여운을 남긴다. 오르부드에서 치명상을 입고 홀로 남겨진 케니를 리바이가 발견한다. 죽어가는 케니는 '신의 힘'을 좇아온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며, 우리 레이스에게서 보았던 그 다정함이 대체 무엇인지 끝내 알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하나의 진실에 다다른다. '결국 다들 무언가의 노예였어' — 술의 노예, 여자의 노예, 신의 노예, 꿈의 노예, 아이의 노예. 초대 왕의 맹세에 묶인 왕가도, 좌표를 좇는 로드도, 힘을 갈망한 자신도, 모두 무언가에 사로잡혀 살았다는 이 통찰은 왕정 편 전체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케니는 자신이 훔쳐 두었던 거인화 주사약을 리바이에게 건네고 숨을 거둔다. 이 주사약은 훗날 시가나 구 탈환전(5막)에서 아르민과 에르빈 중 누구를 살릴 것인가라는 시리즈 최대의 딜레마로 이어지는 결정적 복선이 된다. 냉혹한 살인귀였던 삼촌과 그가 버린 조카가 나누는 마지막 대화는, 이 잔혹한 세계에서도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무언가를 남긴다는 인간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새로운 여왕의 즉위, 부정당한 자가 누군가를 품다
두 달 뒤, 히스토리아 레이스는 정식으로 새 여왕에 즉위한다. 그녀의 즉위는 조사병단의 정변을 합법화하고, 진실을 은폐하던 옛 왕정을 청산하며, 조사병단이 마침내 세계의 비밀 — 그리샤의 지하실 — 에 도달할 권력과 명분을 확보했음을 뜻한다. 여왕이 된 히스토리아는 남의 기대를 연기하던 '착한 크리스타'를 벗고, 지하가 출신 리바이의 지지 속에 가난한 이들과 고아를 위한 보금자리(고아원 겸 농장)를 세운다. 존재를 부정당하며 자란 소녀가 이제는 버림받은 이들에게 존재할 자리를 내어주는 통치자가 되는 이 결말은, 이 막이 그저 정치적 반전에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의 성장 서사로 완결됨을 보여준다.
서사 전체에서 이 막의 의미는 결정적이다. 앞선 3막(여자형 거인·성벽의 배신자)이 '벽 안에도 적이 있다'는 외부적 배신을 드러냈다면, 이 막은 그 배신의 뿌리가 인류를 지켜온 왕정과 초대 왕의 사상 자체에 있음을 폭로한다. 인류의 수호자로 믿어온 벽과 왕가가, 실은 진실을 지우고 백성을 무지 속에 가둔 통제 장치였다는 반전은 '적/아군', '인간/거인'이라는 초기의 단순 구도를 근본에서 해체한다. 동시에 이 막은 다음 막(5막, 시가나 구 탈환과 지하실의 진실)으로 가는 모든 열쇠를 손에 쥐여 준다. 조사병단이 세계의 진실에 접근할 권력을 얻었고, 에렌의 경화 능력이 실전에서 검증되었으며, 케니가 남긴 주사약이라는 시한폭탄이 장전되었고, 무엇보다 '벽 밖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향해 조사병단이 마침내 왕정의 방해 없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왕정 편은 거인 없이도 「진격의 거인」이 얼마나 깊은 인간극·정치극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시리즈의 지적·정서적 무게중심이다.
5
시가나 구 탈환과 지하실의 진실
Season 3 Part 2
시가나 구 탈환전의 서막
다섯 번째 막은 『진격의 거인』 전반부가 던져 온 모든 질문—성벽 밖에는 무엇이 있는가, 거인은 대체 무엇인가, 에렌의 아버지 그리샤는 왜 지하실 열쇠를 아들의 목에 걸어 주고 사라졌는가—이 마침내 한꺼번에 회수되는 서사의 결절점이다. 앞선 왕정 편에서 조사병단은 벽 안 인류의 진짜 지배 구조를 뒤엎고, 시가나 구를 되찾아 지하실에 도달할 정치적·군사적 권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 문 앞까지 가는 길은 이 작품이 지금까지 보여 준 어떤 전투보다도 잔혹한 대가를 요구한다. 시즌 3 Part 2에 해당하는 이 막(마리아 탈환전, 통칭 '시가나 구 전투')은 단순한 성벽 재탈환극이 아니라, 인류가 오랜 세월 믿어 온 세계관 자체를 뒤엎기 위해 한 세대의 병사들이 통째로 소모되는 과정이며, 동시에 리바이·에르빈·아르민·에렌 각자의 내면이 극한까지 시험받는 인물극이다.
발단은 조용하다. 조사병단은 오랜 숙원이던 벽 마리아 탈환 작전에 나선다. 목표는 두 가지—초대형 거인이 뚫어 놓았던 시가나 구 성벽의 구멍을 에렌의 경화 능력으로 틀어막아 벽 안을 다시 봉쇄하는 것, 그리고 에렌의 옛집 지하실에 도달해 그리샤가 남긴 '세계의 진실'을 손에 넣는 것이다. 그런데 시가나 구에 진입한 병사들은 이상한 정적과 마주한다. 폐허가 된 거리에 거인이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에렌은 계획대로 자신을 거인화해 성벽의 구멍을 경화로 봉쇄하는 데 성공하지만, 명석한 아르민은 이 부자연스러운 고요 속에서 최근에 사용된 야영 흔적을 발견하고 등골이 서늘해진다. 적은 성벽 '밖'이 아니라 성벽 '안쪽 꼭대기'에 이미 숨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존극처럼 시작한 작전은 순식간에 정교하게 설계된 함정임이 드러나고, 여기서부터 발단은 급격히 전개로 넘어간다.
적의 진짜 정체 드러나다
전개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라이너 브라운, 즉 갑옷 거인이다. 성벽 위에 잠복해 있던 라이너가 몸을 거인화하며 벽 아래의 조사병단을 덮치고, 곧이어 제케 예거가 조종하는 짐승 거인이 전장을 총지휘하기 시작한다. 짐승 거인은 무수한 무지성 거인 군단을 부리는 동시에, 거대한 바위를 던져 안쪽 성문을 틀어막아 조사병단의 말들을 후방에 가둬 버린다. 퇴로가 끊긴 병사들은 이제 성벽 도시 한복판에서 갑옷 거인과 초대형 거인, 그리고 하늘에서 날아드는 짐승 거인의 투석 사이에 완전히 포위된다. 이 배치 자체가 잔혹한 상징이다—3년 전 초대형·갑옷 거인이 성벽을 부수며 이 도시를 지옥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인류는 다시 한 번 같은 적들에게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신무기 뇌창과 학살의 시작
인류 측의 반격 카드는 신무기 '뇌창(썬더 스피어)'이다. 리바이 반과 한지 반은 갑옷 거인의 단단한 경화 장갑을 뚫기 위해 개발된 뇌창을 라이너에게 집중 투척하고, 미카사가 라이너의 벌어진 입 안으로 뇌창을 꽂아 넣어 폭발시키면서 라이너를 거인 몸체에서 튕겨 내는 데 성공한다. 인류가 마침내 지능형 거인을 '기술'로 공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는 앞 막들의 축적이 회수되는 순간이지만, 승리의 여운은 짧다. 진짜 학살은 짐승 거인에게서 온다. 성벽 밖 언덕에서 제케가 던지는 바위 파편들이 유성처럼 날아들어, 입체기동장치로 공중에 뜬 조사병단 병사들을 무더기로 찢어 죽인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던 병사들이 손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핏덩이가 되어 떨어지는 이 장면은, 지금까지의 어떤 거인전과도 다른 '일방적 도살'의 공포를 각인시킨다. 전멸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에르빈의 돌격과 자기희생
절정의 핵심에는 단장 에르빈 스미스의 결단이 있다. 짐승 거인을 쓰러뜨릴 유일한 길은, 인류 최강의 병사 리바이가 제케에게 접근할 시간을 버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벌려면 살아남은 신병들을 미끼로 삼아 짐승 거인을 향해 정면으로 돌격시켜야 하고, 그것은 곧 그들 전원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 순간 에르빈은 평생을 걸어온 개인적 꿈—성벽 밖 세계의 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죽은 아버지의 가설을 증명하고 싶다는 어린 시절부터의 열망—과, 단장으로서 부하들을 사지로 보내야 하는 책임 사이에서 무너질 듯 흔들린다. 하지만 그는 끝내 사적인 꿈을 포기하고, 자신도 선두에서 함께 죽는 길을 택한다. "겁쟁이로 굴복하느니 싸우다 죽는 편이 낫다"는 신념 아래, 에르빈은 신병들에게 이 돌격이 죽음이라는 진실을 숨기지 않은 채 함께 앞장서 달린다. 병사들은 단장의 등을 보며 심장을 바쳐 산화하고, 에르빈 역시 짐승 거인의 투석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다. 이 '에르빈의 돌격'은 작품 전체에서 지도자의 자기희생과 대의를 위한 개인의 소멸을 상징하는 명장면으로 남는다.
리바이의 절대 무력과 짐승 거인의 격퇴
이 목숨값을 딛고 리바이가 홀로 짐승 거인의 배후로 파고든다. 리바이 대 짐승 거인의 대결은 시리즈 최고의 액션으로 꼽히는 장면으로, 리바이는 압도적인 기동과 검술로 제케가 조종하는 짐승 거인의 몸을 난도질하고, 마침내 목덜미에서 제케를 직접 끄집어내 사경을 헤매게 만든다. 인류가 짐승 거인이라는 최강의 적을 처음으로 무력화한 순간이다. 다만 리바이는 이후 라이너가 다시 개입하고 상황이 급변하는 와중에 제케를 처단하지 못하고 놓치게 되는데, 이 미결의 순간은 이후 마레편에서 리바이와 제케의 악연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복선이 된다.
아르민의 희생과 혈청의 선택
절정의 또 다른 축은 아르민이다. 초대형 거인으로 변신한 베르톨트 후버가 압도적인 열풍과 질량으로 남은 조사병단을 몰살하려 하자, 아르민은 자신을 미끼로 내던져 베르톨트의 주의를 끄는 결사의 계략을 세운다. 그는 에렌을 진짜 표적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불길과 열기 속으로 뛰어들고, 그 대가로 초대형 거인의 초고온에 온몸이 새까맣게 타 죽음의 문턱에 이른다. 지략으로 승부해 온 이 소년이 목숨을 던져 만든 이 틈 덕분에 에렌과 미카사가 베르톨트를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승리의 순간, 조사병단에는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결말부의 심장은 이른바 '혈청 선택(세럼볼)'이다. 에르빈이 리바이에게 맡겨 둔 거인화 혈청은 단 하나뿐인데, 빈사 상태의 부상자는 둘이다—세계의 진실을 밝히려는 조사병단의 두뇌이자 단장인 에르빈, 그리고 바다 너머를 꿈꾸던 소년이자 미래의 지략가인 아르민. 누구에게 혈청을 주사해 무지성 거인으로 만든 뒤 베르톨트를 먹여 회복시키느냐에 따라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는다. 에렌과 미카사는 오열하며 아르민을 살려 달라 매달리고, 리바이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처음엔 에르빈을 되살리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주사기를 든 그 순간, 의식 없이 잠꼬대를 하며 평온한 표정을 짓는 에르빈을 보고 리바이는 마음을 바꾼다. 그는 켄니가 남긴 말—사람은 저마다 무언가에 사로잡혀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고, 에르빈을 이 지옥으로 다시 끌어내 '단장'의 짐을 두 번 지우는 것은 친구로서 차마 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결국 리바이는 에르빈을 편히 죽게 놓아주고, 아르민에게 혈청을 주사한다. 무지성 거인이 된 아르민은 빈사의 베르톨트를 먹어 초대형 거인의 힘을 계승하고 온전한 인간으로 되살아난다. 살려 달라 절규하던 베르톨트의 마지막 외침은 끝내 응답받지 못한 채 삼켜지고, 라이너는 중상을 입은 채 홀로 도주해 마레로 돌아간다. 이 선택은 이후에도 팬들 사이에서 끝없는 논쟁을 낳는 장면으로, 지도자의 죽음과 다음 세대의 생존을 맞바꾼 이 결정은 작품 후반부 전체의 방향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된다.
세계의 진실을 마주하다
그리고 이 모든 죽음의 대가로, 인류는 마침내 문 앞에 선다. 살아남은 자들—리바이, 한지, 에렌, 미카사—은 시가나 구를 완전히 탈환한 뒤 에렌의 옛집 지하실로 향한다. 에렌은 아버지 그리샤가 남긴, 오랜 세월 자기 목에 걸려 있던 열쇠로 문을 연다. 책상 서랍 속 숨겨진 칸에서 나온 것은 세 권의 책, 곧 그리샤의 수기와 사진들이었다. 그 안에는 성벽 밖 인류가 멸망하지 않았다는 진실, 바다 건너 '마레'라는 강대국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신들이 오랜 세월 세계로부터 '악마의 민족'으로 박해받아 온 엘디아인이라는 정체, 거인이 사실은 변형된 인간이라는 충격적 기원, 그리고 시조 거인의 힘에 얽힌 비밀이 담겨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리샤 곁에 낯선 여인과 에렌이 아닌 다른 아이가 함께 찍힌 사진 한 장은, 벽 안 세계가 유일한 인류라는 믿음을 산산조각 낸다. 사진기라는 문명의 이기 자체가 벽 밖에 발전된 문명이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서사의 전환점
이 다섯 번째 막이 전체 서사에서 갖는 의미는 결정적이다. 이 막을 기점으로 『진격의 거인』은 '거인으로부터 살아남는 생존극'에서 '민족·역사·전쟁의 비극'으로 완전히 탈피한다. 앞 막들에서 뿌려진 복선—에렌의 거인화, 라이너·베르톨트·아니의 정체, 지하실 열쇠, 에르빈의 아버지가 품었던 금지된 가설, 무지성 거인들의 정체—이 이 막에서 한꺼번에 회수되며, 벽 안 인류가 세계의 피해자인 동시에 더 큰 세계사의 한 조각에 불과했음이 드러난다. 짐승 거인 제케가 사실 에렌의 이복형이라는 점, 리바이가 제케를 놓친 점, 아르민이 초대형 거인을 계승한 점, 에르빈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점은 모두 다음 막인 '마레편'으로 곧장 이어지는 씨앗이 된다. 무대는 이제 벽 안에서 벽 밖—바다 건너 마레로 넘어갈 준비를 마치고, 관객은 지금까지 '적'이라 믿었던 거인의 반대편에 또 다른 인간들의 증오와 역사가 있음을 마주하게 된다. 요컨대 이 막은 한 세대 병사들의 몰살과 한 지도자의 죽음이라는 값을 치르고 얻어 낸 '진실의 문'이며, 그 문을 여는 순간 이야기는 돌이킬 수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6
증오의 충돌과 진영 분열
The Final Season Part 2
땅울림의 발동
이 막은 「진격의 거인」이라는 대서사가 도달한 종착점이자, 앞선 일곱 개의 막이 쌓아 올린 모든 질문 — 자유란 무엇인가, 증오는 대물림되는가, 벽 밖의 세계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 이 단 하나의 파국적 사건으로 수렴하는 클라이맥스다. 앞 막 '증오의 충돌과 진영 분열'에서 에렌은 동료들과 노선을 달리하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 마지막 막은 그 폭주가 실제로 세계를 짓밟는 순간부터 시작해, 그를 막기 위해 옛 적과 옛 동료가 하나로 뭉치는 역설, 그리고 2000년의 저주를 끝내는 결말까지를 담는다.
발단은 '땅울림(地鳴らし)'의 발동이다. 에렌 예거는 시조 거인의 힘과, 왕가의 피를 이은 이복형 지크 예거의 존재를 결합함으로써 벽 속에 잠들어 있던 무수한 초대형 거인들을 깨운다. 파라디 섬의 삼중 성벽 — 월 마리아, 월 로제, 월 시나 — 을 이루고 있던 그 거인들은 첫 막에서 인류를 가둔 감옥의 벽이었으나, 이제 그 정체가 낱낱이 드러난다. 벽은 애초에 수만 마리의 초대형 거인으로 쌓아 올린 것이었고, 에렌은 이들을 해방해 바다 건너 대륙으로 진군시킨다. 이 장면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잔혹한 아이러니의 회수다. 1막에서 인류를 절망에 빠뜨린 '벽을 넘어오는 거인'의 공포가, 이제는 인류(엘디아인) 자신이 세계를 향해 내미는 학살의 도구로 뒤집힌 것이다. 대륙 마레 본토에 첫발을 디딘 뒤 나흘에 걸쳐, 땅울림은 마레를 비롯한 북부 대륙을 짓밟고 남부와 이웃 국가들까지 유린한다. 그 결과 지구상 인류의 약 8할이 목숨을 잃는다. 이것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문명 단위의 절멸이며, 에렌이라는 한 인간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인류 최대 규모의 제노사이드다.
에렌의 복잡한 동기
에렌의 동기는 이 막에서 가장 복잡하고 논쟁적인 심리로 그려진다. 표면적 명분은 명확하다. 세계는 파라디 섬을 '악마의 민족'으로 규정하고 어떤 외교적 대화도 거부했으며, 엘디아인이 존재하는 한 벽 밖 세계는 언젠가 파라디를 절멸시키려 들 것이다. 따라서 에렌은 '적이 될 모든 생명을 먼저 없애' 고향과 동료를 지키려 한다. 그러나 이 명분 아래에는 더 깊고 어두운 충동이 깔려 있다. 그는 미래의 기억까지 흐르는 '진격의 거인'의 힘에 이끌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이미 보았고 그 정해진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동시에 그는 벽 밖에 펼쳐진 광활한 세계 — 어린 시절 아르민의 책에서 꿈꾸던 그 '자유' — 를 직접 보고서, 그 세계에 자기 이외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 실망하고, '전부 없애버리고 싶다'는 형언할 수 없는 파괴 충동을 품고 있었음이 뒤에 밝혀진다. 이렇듯 에렌의 학살은 전략과 광기, 숙명과 자유의지가 뒤엉킨 것이며, 작품은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도 순교자로도 정리하지 않는다.
연합의 결집과 최후의 역설
전개는 그를 막으려는 자들의 결집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시리즈 최대의 역설이 성립한다. 오랜 세월 서로를 죽이려 했던 파라디의 조사병단(미카사, 아르민, 장, 코니, 리바이 등)과 마레의 전사들(라이너, 아니, 피크, 가비, 팔코 등)이, 인류 절멸을 막는다는 단 하나의 목표 아래 '연합(Alliance)'을 이룬다. 벽 안에 숨어든 배신자였던 라이너와 아니, 여자형 거인이었던 아니, 갑옷 거인 라이너 — 앞선 막들에서 조사병단의 원수였던 이들이, 이제는 옛 적의 손을 잡고 옛 동료 에렌을 저지하러 나선다. 이 진영 재편은 '증오의 대물림을 끝낸다'는 이 막의 핵심 주제를 인물 배치 그 자체로 형상화한다. 적과 아군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남는 것은 '더 이상 아이들이 죽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인간들의 연대뿐이다.
포트 살타의 최후 결전
연합은 하늘을 나는 비행정을 타고 땅울림을 추격한다. 이 최후의 결전에서 어린 세대의 성장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앞 막에서 지크의 척수액을 삼켜 무구 거인이 되었다가 조라 위해 되돌아온 팔코 그라이스는, 과거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짐승 거인의 기억을 이어받아 '나는 턱 거인(Jaw Titan)'으로 각성한다. 그가 미카사와 리바이를 태우고 에렌의 시조 거인에게 접근하는 장면은, 1막에서 무력한 소년병에 불과했던 존재들이 어떻게 세계의 향방을 짊어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세대교체의 상징이다. 최종 결전지는 사막의 요새 포트 살타(Fort Salta) — 대륙에 마지막으로 남은 인류의 피난처 — 이며, 연합은 이곳에서 에렌의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각자의 영광과 희생
인물별 활약은 각자의 서사가 완결되는 순간들로 채워진다. 리바이 아커만은 앞 막에서 지크의 자폭으로 중상을 입고도, 끝내 자신의 숙원이자 에르빈 단장과의 약속이었던 '지크를 죽인다'는 임무를 완수해 땅울림의 동력을 끊는 데 기여한다. 아르민 아를레르트는 초대형 거인으로 변신해 시조 거인의 몸을 폭발로 날려버리며, 지식과 지혜로 인류를 이끌어온 그가 마지막엔 자신의 목숨을 건 폭발로 결정적 돌파구를 연다 — 어린 시절 바다 너머 세계를 꿈꾸던 소년이, 그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것이다. 장 키르슈타인은 시조 거인의 목덜미로 침투해 그 목에 두른 폭약을 기폭시키며, 늘 현실적이고 이기적이고자 했으나 결국 가장 인간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로서 자기 몫의 결단을 내린다.
미카사의 선택과 저주의 종료
그러나 이 막의 감정적 정점이자 서사 전체의 매듭은 에렌과 미카사 아커만의 관계에 있다. 에렌은 앞서 '길(Paths)'이라는 초월적 차원에서 동료들에게 개별적으로 자신의 진짜 의도를 털어놓았다. 그는 세계의 증오를 파라디에서 자기 한 몸으로 돌린 뒤, 동료들이 자신을 죽여 '세계를 구한 영웅'이 되게 하려 했다. 그러나 아커만 혈통인 미카사와 리바이만은 시조 거인의 기억 조작에 저항할 수 있어, 에렌의 계획은 결국 미카사의 손에 달리게 된다. 최후의 순간, 아르민이 시조 거인과 격돌하는 사이 미카사는 붕괴하는 거인의 입 속에서 인간 에렌이 있는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내 그의 목을 벤다. 그리고 잘린 그의 머리를 안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입맞춤을 건넨다. 이 행위야말로 이 막이, 나아가 작품 전체가 던진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이다.
미카사의 이 선택이 곧 2000년 저주를 끝내는 열쇠였다는 사실이 마지막에 드러나며, 앞선 모든 막에 걸쳐 뿌려진 최대의 복선이 회수된다. 모든 거인의 근원인 시조 유미르(Ymir Fritz)는 2000년 전 프리츠 왕의 노예이자 희생자였으나, 자신을 학대한 그 왕에 대한 뒤틀린 애착 — 벗어날 수 없는 트라우마적 예속 — 때문에 '길'의 차원에 갇혀 거인의 힘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었다. 유미르는 '가장 사랑하는 이를 죽이고서라도 예속이 아닌 자유를 택할 수 있음'을 보여줄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미카사가 에렌을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그를 죽여 세계를 해방하는 순간, 유미르는 마침내 프리츠 왕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린다. 그 결과 시조 거인이 소멸하고, 거인의 힘 전체가 세상에서 사라지며, 유미르의 백성 모두가 2000년 묵은 저주에서 풀려난다. 에렌의 죽음은 그의 소멸인 동시에 인류 전체의 해방이며, 여자형 거인·갑옷 거인·초대형 거인을 비롯한 아홉 거인의 저주 또한 영원히 끊긴다.
불완전한 평화와 미래의 질문
결말은 결코 순수한 해피엔딩이 아니다. 에렌은 '길'에서 아르민과 나눈 마지막 대화에서, 자신의 학살이 온전히 전략적 판단만은 아니었음을, 그리고 미카사가 자신을 잊지 못하기를 바라는 지극히 사적이고 미숙한 감정 —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나를 마음에 품어주길 바란다" — 을 눈물로 고백한다. 세계를 파괴한 절대적 존재였던 그가, 마지막엔 사랑받고 기억되기를 바라는 한 청년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이 고백은 그의 모든 행위를 미화하지도 정당화하지도 않은 채, 다만 그를 인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 막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지점, 즉 서사의 여운은 에필로그에서 완성된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자들은 인류를 절멸에서 구한 영웅으로 기려지며, 아르민을 비롯한 이들은 파라디와 세계의 화평을 위한 사절로 나선다. 그러나 작품은 마지막에 냉엄한 코다를 덧붙인다. 세월이 흘러 에렌의 무덤 — 그가 어린 시절 낮잠 자던 나무 아래 — 을 찾던 미카사는 결국 다른 삶을 살아 가정을 이루고, 늙어 그 나무 곁에 함께 묻힌다. 그리고 더 먼 미래, 그 무덤을 품은 파라디에는 미래적 도시가 세워지지만 또다시 전쟁이 발발해 도시는 잿더미가 된다. 증오와 폭력의 순환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자유를 향한 인간의 몸부림은 새로운 파국을 부를 수도 있음을 작품은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다. 이렇듯 이 막은 거인이라는 초현실적 저주는 끝냈으되 인간 자체의 조건은 끝내지 못했다는, 「진격의 거인」 특유의 잔혹하고도 정직한 세계관으로 대서사를 매듭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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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충돌과 진영 분열
The Final Season Part 2
리베리오 기습과 파국의 시작
이 막은 앞선 「마레편 — 무대의 전환」에서 파라디 섬 조사병단이 바다를 건너 마레 본토의 항구도시 리베리오를 기습하며 촉발된 전면 충돌의 후폭풍에서 시작된다.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 뒤 4년, 그리고 리베리오 기습을 거치며 이야기는 더 이상 '거인 대 인류'가 아니라 '민족 대 민족, 나아가 개인의 자유의지 대 세계 전체'라는 훨씬 어두운 국면으로 넘어간다. 발단은 승리처럼 보였던 리베리오 기습이 실은 회복 불가능한 균열의 시작이었다는 데 있다. 에렌은 진 거인(수인 거인의 마레측 계승자 포르코를 삼킨 죽 사르코를 포함해)과 전투 끝에 마레군의 요인들을 살상하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회의석 한복판에 갑자기 거인화해 나타나 무차별적 파괴를 저지른다. 이 과정에서 어린 소녀 가비를 비롯한 마레측 다음 세대의 눈에는, 에렌과 파라디 사람들이 정확히 '악마의 섬 놈들'이라는 마레의 선전 그대로 각인된다. 앞 막이 팔코·가비의 시선으로 '갈등의 반대편'을 보여주었다면, 이 막은 그 반대편의 증오가 파라디측의 폭력과 정면으로 맞부딪치며 되먹임되는 과정을 그린다.
전쟁의 외상: 사샤의 죽음과 연쇄되는 증오
귀환하는 비행선 위에서 벌어지는 비극이 이 막의 정서적 도화선이다. 리베리오에서 도망쳐 몰래 비행선에 숨어든 가비가,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잃은 복수심으로 소총을 난사하고, 그 총탄이 사샤 브라우스를 명중시킨다. 먹을 것을 사랑하고 언제나 팀의 온기였던 사샤가 '고기…'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는 장면은, 전쟁의 사이클이 아군의 한복판까지 파고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사샤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상실을 넘어, 코니·장·미카사 등 104기 동료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증오와 슬픔을 심는다. 특히 코니는 어머니를 거인으로 잃은 상처 위에 절친마저 잃으며 한때 가비를 거인으로 만들어 어머니에게 먹이려는 극단으로까지 치닫고, 그 광기를 가까스로 멈추는 것은 팔코를 지키려는 의지와 아르민의 개입이다. 이렇게 증오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전염되며, 이 막의 제목 그대로 '증오의 충돌'이 인물들 내면에서부터 번지기 시작한다.
에렌의 배신과 동료관계의 붕괴
전개의 축은 에렌이 동료들과 결정적으로 노선을 달리하는 과정이다. 리베리오 이전부터 에렌은 홀로 마레에 잠입해 팔코와 접촉하고, 형 지크와 은밀히 연결되며, 파라디 내부에서도 이미 조사병단 상층부의 통제 밖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막에서 에렌은 명령 불복종과 독단 행동을 이유로 결국 지하 감옥에 구금된다. 감옥에 갇힌 에렌을 미카사와 아르민이 면회 오지만, 에렌은 그들에게 차갑고 잔인한 말을 쏟아낸다. 미카사를 향해 그녀가 자신을 따르는 것은 아커만 혈통의 '숙주에 대한 본능' 때문일 뿐 진짜 자유의지가 아니라며 인격을 짓밟고, 이를 참지 못한 아르민이 에렌을 구타한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에게 세계의 전부였던 세 사람의 관계가 이 면회 장면에서 처참히 부서진다. 훗날 밝혀지듯 이 잔혹함의 상당 부분은 미래 기억을 본 에렌이 동료들을 자신의 파멸적 계획에서 떼어내 살리려는 위장이자 자기희생적 밀어내기였지만, 이 시점의 동료들에게는 그저 변해버린, 이해할 수 없는 에렌만이 남는다.
지크의 안락사 계획과 형제의 결별
음모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도 이 막이다. 지크의 협력자로 파라디에 들어와 있던 마레 출신 옐레나는, 지크의 척수액이 섞인 포도주를 누가 마셨는지 색깔 완장으로 분류하며 자신들의 진짜 목적을 폭로한다. 그것은 시조 거인의 힘으로 유미르의 백성 전체의 생식 능력을 없애 엘디아인을 한 세대 안에 소멸시키는 '엘디아인 안락사 계획(50년 계획)'이다. 지크는 대를 이어 반복돼 온 증오와 박해의 사슬을 끊는 유일한 길이 엘디아인이라는 저주받은 민족 자체를 평화롭게 끝내는 것이라 믿고, 후계자를 이미 잉태한 왕가 혈통 히스토리아를 통해 시조를 계승시켜 나가려는 청사진을 내놓는다. 안락사 계획 앞에서 히스토리아가 동의하는 듯한 순간, 에렌은 격노하며 지크의 계획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여기서 관객은 에렌과 지크가 겉으로는 손잡은 듯 보이나 실은 전혀 다른 목적지를 향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예거파의 쿠데타와 조사병단의 분열
진영의 분열은 물리적 쿠데타로 폭발한다. 플로크 포르스터가 은밀히 규합해 온 예거파(요원병/예거리스트)는 리베리오 기습 이후의 혼란을 틈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벽 안의 실권을 장악한다. 그들의 명분은 '에렌 예거야말로 엘디아인에게 마땅한 영광을 되찾아 줄 지도자'라는 광신적 믿음이며, 초기 목적은 에렌과 지크를 재회시켜 땅울림 발동을 돕는 것이다. 플로크는 조사병단의 정통 지휘 체계를 무력화하고, 에렌을 신처럼 떠받드는 대중과 병사들을 등에 업는다. 조사병단 내부는 에렌을 따르는 예거파와, 그를 막으려는 한지·리바이·장·아르민·코니 등으로 사실상 갈라진다. 한때 인류의 방패였던 하나의 조직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두 진영으로 쪼개지는 것—이것이 이 막이 그리는 '진영 분열'의 핵심이다.
길의 공간에서 벌어진 자유의 역설
절정은 시가나 구, 에렌이 태어나고 어머니를 잃은 그 땅에서 벌어진다. 예거파와 마레군의 잔당(라이너·팔코를 삼키려는 지크측)과 조사병단 세력이 뒤엉킨 혼전 속에서, 지크는 에렌을 접촉해 시조의 힘을 발동시키려 한다. 척수액과 왕가 혈통, 시조 계승자의 접촉이라는 조건이 갖춰지는 순간, 에렌은 목이 잘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지크와 함께 '길(Paths)'이라 불리는 초월적 좌표 공간에서 깨어난다. 그곳에서 두 형제는 모든 거인의 근원이자 2천 년 전 최초의 거인이었던 유미르 프리츠와 마주한다. 지크는 유미르를 그저 왕가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노예이자 신'으로 여기고, 전쟁 포기 서약을 무효화한 뒤 유미르에게 명령해 에렌을 사슬로 결박한다. 안락사 계획의 완성을 눈앞에 둔 순간이다.
유미르의 각성과 에렌의 진정한 목적
그러나 반전은 에렌이 유미르를 이해하는 데서 온다. 왕가 혈통이 아니면서 길에서 유미르와 대면한 최초의 인간인 에렌은, 유미르가 2천 년간 노예처럼 명령에 묶여 있으면서도 실은 스스로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임을 꿰뚫어 본다. 그는 사슬을 끊고 지크보다 먼저 유미르에게 다가가, 그녀는 노예도 신도 아니며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자신을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다. 2천 년의 억압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 욕망을 일깨워 준 존재 앞에서, 유미르는 지크의 안락사 명령을 거부하고 시조 거인의 완전한 통제권을 에렌에게 넘긴다. 현실의 시가나 구에서는 잘려나갔던 에렌의 머리가 몸에 다시 이어지고, 그가 새로운 거인의 몸을 형성하는 가운데 성벽이 무너지며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무수한 초대형 거인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땅울림의 발동과 인류의 최후 동맹
결말이자 다음 막으로의 도약대는 에렌의 선언이다. 시조 거인의 완전한 힘을 손에 쥔 에렌은 길을 통해 전 세계 유미르의 백성에게 텔레파시로 자신의 의지를 선포한다. 온 세계가 파라디의 절멸을 바라며, 자신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성벽의 거인들을 풀어 파라디 섬 밖의 모든 생명을 짓밟겠다는 것—이것이 '땅울림'의 발동 선언이다. 자유를 향한 그의 폭주가 마침내 세계 전체를 위협하는 재앙으로 구체화되는 순간이며, 파라디의 성벽들이 실제로 무너져 내리며 수백만의 초대형 거인이 대지를 향해 행진을 시작한다. 이 압도적 위협 앞에서, 어제까지 서로를 죽이려던 자들이 손을 잡는다. 한지는 마레의 전사대 피크·마가트와 접촉해 동맹을 제안하고, 리바이와 조사병단 잔당, 그리고 라이너·아니·팔코 등 마레측 전사들이 인류와 세계의 운명을 위해 하나의 '연합군(Alliance)'으로 결집한다. 에렌을 막기 위해 옛 적과 손잡는 이 아이러니한 동맹의 성립은, 다음 막 「땅울림과 최후의 결전」에서 벌어질 최종전의 전선을 확정 짓는다.
막의 의미: 자유의 파국화
서사 전체에서 이 막이 갖는 의미는 결정적이다. 「시가나 구 탈환과 지하실의 진실」에서 밝혀진 '세계의 진실'과 「마레편」에서 제시된 '갈등의 반대편'이라는 두 축을, 이 막은 하나의 파국으로 수렴시킨다. 초반부터 깔려 온 복선들—에렌이 라이너에게 '너와 나는 똑같다'고 한 말, 미래 기억을 통한 예지, 아버지 그리샤가 크루거에게서 들은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물음, 유미르 프리츠의 존재—이 모두가 이 막에서 회수되기 시작한다. 특히 이 막의 진짜 무게는, '자유'라는 이 작품의 최상위 주제가 여기서 가장 잔혹한 형태로 뒤집히는 데 있다. 벽 안에 갇혀 자유를 갈망하던 소년 에렌이, 이제는 자유를 위해 세계 전체를 학살하려는 존재가 되었다. 앞 막이 '적에게도 얼굴과 사연이 있다'는 관점의 확장이었다면, 이 막은 그 관점을 알고서도 폭력을 선택하는 인간의 절망을, 그리고 증오는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지 않고 대물림된다는 이 서사의 핵심 명제를, 진영 분열과 땅울림의 발동으로 형상화한다. 그리하여 이 막은 '거인과 싸우는 이야기'였던 「진격의 거인」을, '증오의 대물림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라는 최종 질문으로 완전히 밀어 올리며, 마지막 결전으로 향하는 문을 연다.
8
땅울림과 최후의 결전
The Final Season 완결편
종착점과 모든 질문의 수렴: 파국적 클라이맥스로의 진입
이 막은 「진격의 거인」이라는 대서사가 도달한 종착점이자, 앞선 일곱 개의 막이 쌓아 올린 모든 질문 — 자유란 무엇인가, 증오는 대물림되는가, 벽 밖의 세계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 이 단 하나의 파국적 사건으로 수렴하는 클라이맥스다. 앞 막 '증오의 충돌과 진영 분열'에서 에렌은 동료들과 노선을 달리하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 마지막 막은 그 폭주가 실제로 세계를 짓밟는 순간부터 시작해, 그를 막기 위해 옛 적과 옛 동료가 하나로 뭉치는 역설, 그리고 2000년의 저주를 끝내는 결말까지를 담는다.
땅울림의 발동: 인류 절멸의 도구로 뒤집혀진 벽
발단은 '땅울림(地鳴らし)'의 발동이다. 에렌 예거는 시조 거인의 힘과, 왕가의 피를 이은 이복형 지크 예거의 존재를 결합함으로써 벽 속에 잠들어 있던 무수한 초대형 거인들을 깨운다. 파라디 섬의 삼중 성벽 — 월 마리아, 월 로제, 월 시나 — 을 이루고 있던 그 거인들은 첫 막에서 인류를 가둔 감옥의 벽이었으나, 이제 그 정체가 낱낱이 드러난다. 벽은 애초에 수만 마리의 초대형 거인으로 쌓아 올린 것이었고, 에렌은 이들을 해방해 바다 건너 대륙으로 진군시킨다. 이 장면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잔혹한 아이러니의 회수다. 1막에서 인류를 절망에 빠뜨린 '벽을 넘어오는 거인'의 공포가, 이제는 인류(엘디아인) 자신이 세계를 향해 내미는 학살의 도구로 뒤집힌 것이다. 대륙 마레 본토에 첫발을 디딘 뒤 나흘에 걸쳐, 땅울림은 마레를 비롯한 북부 대륙을 짓밟고 남부와 이웃 국가들까지 유린한다. 그 결과 지구상 인류의 약 8할이 목숨을 잃는다. 이것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문명 단위의 절멸이며, 에렌이라는 한 인간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인류 최대 규모의 제노사이드다.
복잡한 광기: 에렌의 동기에 숨겨진 파괴 충동
에렌의 동기는 이 막에서 가장 복잡하고 논쟁적인 심리로 그려진다. 표면적 명분은 명확하다. 세계는 파라디 섬을 '악마의 민족'으로 규정하고 어떤 외교적 대화도 거부했으며, 엘디아인이 존재하는 한 벽 밖 세계는 언젠가 파라디를 절멸시키려 들 것이다. 따라서 에렌은 '적이 될 모든 생명을 먼저 없애' 고향과 동료를 지키려 한다. 그러나 이 명분 아래에는 더 깊고 어두운 충동이 깔려 있다. 그는 미래의 기억까지 흐르는 '진격의 거인'의 힘에 이끌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이미 보았고 그 정해진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동시에 그는 벽 밖에 펼쳐진 광활한 세계 — 어린 시절 아르민의 책에서 꿈꾸던 그 '자유' — 를 직접 보고서, 그 세계에 자기 이외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 실망하고, '전부 없애버리고 싶다'는 형언할 수 없는 파괴 충동을 품고 있었음이 뒤에 밝혀진다. 이렇듯 에렌의 학살은 전략과 광기, 숙명과 자유의지가 뒤엉킨 것이며, 작품은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도 순교자로도 정리하지 않는다.
적과 동료의 재편: 증오의 대물림을 끝내다
전개는 그를 막으려는 자들의 결집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시리즈 최대의 역설이 성립한다. 오랜 세월 서로를 죽이려 했던 파라디의 조사병단(미카사, 아르민, 장, 코니, 리바이 등)과 마레의 전사들(라이너, 아니, 피크, 가비, 팔코 등)이, 인류 절멸을 막는다는 단 하나의 목표 아래 '연합(Alliance)'을 이룬다. 벽 안에 숨어든 배신자였던 라이너와 아니, 여자형 거인이었던 아니, 갑옷 거인 라이너 — 앞선 막들에서 조사병단의 원수였던 이들이, 이제는 옛 적의 손을 잡고 옛 동료 에렌을 저지하러 나선다. 이 진영 재편은 '증오의 대물림을 끝낸다'는 이 막의 핵심 주제를 인물 배치 그 자체로 형상화한다. 적과 아군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남는 것은 '더 이상 아이들이 죽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인간들의 연대뿐이다.
최후의 결전과 세대교체의 상징
연합은 하늘을 나는 비행정을 타고 땅울림을 추격한다. 이 최후의 결전에서 어린 세대의 성장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앞 막에서 지크의 척수액을 삼켜 무구 거인이 되었다가 조라 위해 되돌아온 팔코 그라이스는, 과거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짐승 거인의 기억을 이어받아 '나는 턱 거인(Jaw Titan)'으로 각성한다. 그가 미카사와 리바이를 태우고 에렌의 시조 거인에게 접근하는 장면은, 1막에서 무력한 소년병에 불과했던 존재들이 어떻게 세계의 향방을 짊어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세대교체의 상징이다. 최종 결전지는 사막의 요새 포트 살타(Fort Salta) — 대륙에 마지막으로 남은 인류의 피난처 — 이며, 연합은 이곳에서 에렌의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각자의 서사가 완결되는 순간들
인물별 활약은 각자의 서사가 완결되는 순간들로 채워진다. 리바이 아커만은 앞 막에서 지크의 자폭으로 중상을 입고도, 끝내 자신의 숙원이자 에르빈 단장과의 약속이었던 '지크를 죽인다'는 임무를 완수해 땅울림의 동력을 끊는 데 기여한다. 아르민 아를레르트는 초대형 거인으로 변신해 시조 거인의 몸을 폭발로 날려버리며, 지식과 지혜로 인류를 이끌어온 그가 마지막엔 자신의 목숨을 건 폭발로 결정적 돌파구를 연다 — 어린 시절 바다 너머 세계를 꿈꾸던 소년이, 그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것이다. 장 키르슈타인은 시조 거인의 목덜미로 침투해 그 목에 두른 폭약을 기폭시키며, 늘 현실적이고 이기적이고자 했으나 결국 가장 인간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로서 자기 몫의 결단을 내린다.
미카사의 선택과 2000년 저주의 종결
그러나 이 막의 감정적 정점이자 서사 전체의 매듭은 에렌과 미카사 아커만의 관계에 있다. 에렌은 앞서 '길(Paths)'이라는 초월적 차원에서 동료들에게 개별적으로 자신의 진짜 의도를 털어놓았다. 그는 세계의 증오를 파라디에서 자기 한 몸으로 돌린 뒤, 동료들이 자신을 죽여 '세계를 구한 영웅'이 되게 하려 했다. 그러나 아커만 혈통인 미카사와 리바이만은 시조 거인의 기억 조작에 저항할 수 있어, 에렌의 계획은 결국 미카사의 손에 달리게 된다. 최후의 순간, 아르민이 시조 거인과 격돌하는 사이 미카사는 붕괴하는 거인의 입 속에서 인간 에렌이 있는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내 그의 목을 벤다. 그리고 잘린 그의 머리를 안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입맞춤을 건넨다. 이 행위야말로 이 막이, 나아가 작품 전체가 던진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이다.
미카사의 이 선택이 곧 2000년 저주를 끝내는 열쇠였다는 사실이 마지막에 드러나며, 앞선 모든 막에 걸쳐 뿌려진 최대의 복선이 회수된다. 모든 거인의 근원인 시조 유미르(Ymir Fritz)는 2000년 전 프리츠 왕의 노예이자 희생자였으나, 자신을 학대한 그 왕에 대한 뒤틀린 애착 — 벗어날 수 없는 트라우마적 예속 — 때문에 '길'의 차원에 갇혀 거인의 힘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었다. 유미르는 '가장 사랑하는 이를 죽이고서라도 예속이 아닌 자유를 택할 수 있음'을 보여줄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미카사가 에렌을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그를 죽여 세계를 해방하는 순간, 유미르는 마침내 프리츠 왕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린다. 그 결과 시조 거인이 소멸하고, 거인의 힘 전체가 세상에서 사라지며, 유미르의 백성 모두가 2000년 묵은 저주에서 풀려난다. 에렌의 죽음은 그의 소멸인 동시에 인류 전체의 해방이며, 여자형 거인·갑옷 거인·초대형 거인을 비롯한 아홉 거인의 저주 또한 영원히 끊긴다.
순수하지 않은 결말: 인간의 조건과 새로운 순환
결말은 결코 순수한 해피엔딩이 아니다. 에렌은 '길'에서 아르민과 나눈 마지막 대화에서, 자신의 학살이 온전히 전략적 판단만은 아니었음을, 그리고 미카사가 자신을 잊지 못하기를 바라는 지극히 사적이고 미숙한 감정 —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나를 마음에 품어주길 바란다" — 을 눈물로 고백한다. 세계를 파괴한 절대적 존재였던 그가, 마지막엔 사랑받고 기억되기를 바라는 한 청년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이 고백은 그의 모든 행위를 미화하지도 정당화하지도 않은 채, 다만 그를 인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 막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지점, 즉 서사의 여운은 에필로그에서 완성된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자들은 인류를 절멸에서 구한 영웅으로 기려지며, 아르민을 비롯한 이들은 파라디와 세계의 화평을 위한 사절로 나선다. 그러나 작품은 마지막에 냉엄한 코다를 덧붙인다. 세월이 흘러 에렌의 무덤 — 그가 어린 시절 낮잠 자던 나무 아래 — 을 찾던 미카사는 결국 다른 삶을 살아 가정을 이루고, 늙어 그 나무 곁에 함께 묻힌다. 그리고 더 먼 미래, 그 무덤을 품은 파라디에는 미래적 도시가 세워지지만 또다시 전쟁이 발발해 도시는 잿더미가 된다. 증오와 폭력의 순환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자유를 향한 인간의 몸부림은 새로운 파국을 부를 수도 있음을 작품은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다. 이렇듯 이 막은 거인이라는 초현실적 저주는 끝냈으되 인간 자체의 조건은 끝내지 못했다는, 「진격의 거인」 특유의 잔혹하고도 정직한 세계관으로 대서사를 매듭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