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NTENTSCOLUMNKOEN
KONTENTS INDEX FAMILY
KONTENTS COLUMN

K-콘텐츠를 기록하는 칼럼 — KI 지수의 공식 해설과 부문별 심층 칼럼

KI 칼럼K-팝 칼럼K-드라마 칼럼K-필름 칼럼
EDITORIAL · 2025-Q1
관점

귤 한 알의 역설
—풍년 든 화면, 말라가는 들판

2025년 1분기, 한국 드라마는 가장 빛나는 순간에 가장 깊이 곪았다. 세계가 한 편의 제주 서사에 울던 그 봄, 정작 그 서사를 길러낸 토양은 빠르게 메말라가고 있었다.

KONTENTS INDEX 편집부 · 읽기 4분
서론

2025년 3월, 한 편의 드라마가 국경을 지웠다. 3월 7일부터 28일까지 공개된 16부작 제주 서사는 넷플릭스 상반기 집계에서 글로벌 약 2,200만 시청을 기록하며 그해 한국 콘텐츠의 얼굴이 되었다. 미국 시사주간지가 '올해 최고의 한국 드라마'로 꼽았고, 거리에서는 작품 제목이 하나의 정서적 유행어가 되었다. K-드라마의 봄은 그렇게 화려하게 도착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같은 분기, 업계 안쪽에서 오가던 단어는 '전성기'가 아니라 '보릿고개'였다. 화면 위의 풍년과 들판의 흉작이 정확히 같은 시각에 공존했다. 이 글이 묻고자 하는 것은 단순하다. 한 알의 잘 익은 귤이, 텅 비어가는 과수원을 정말 가릴 수 있는가.

풍년의 착시 — 한 편의 히트가 가린 것

대표작 한 편의 약 600억 원이라는 제작비는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산술을 압축한다. 불과 몇 해 전 회당 평균 3~4억 원이던 제작비는 이제 회당 20억 원이 '기본값'이 되었고, 텐트폴은 회당 30억 원을 넘긴다. 문제는 이 돈이 어디로 흐르느냐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제작비에서 출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를 웃돌고, 톱배우의 회당 출연료는 5억에서 10억 원을 오간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가 연초 위기 논의 자리에서 '주인공은 회당 억이 아니라 10억이 현실'이라 토로한 것은 엄살이 아니라 손익계산서였다.

히트작의 환호는 진실이지만,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 성공은 평균이 아니라 예외다. 한 편의 글로벌 흥행은 수십 편의 손익분기 미달을 회계장부 위에서 지워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한 편이 만들어낸 '대박의 기준선'이 다음 작품의 몸값과 기대치를 다시 끌어올리며, 평균적인 제작자의 어깨를 더 무겁게 짓누른다. 풍년의 사진 한 장이 흉작의 통계를 덮는 순간, 우리는 산업이 아니라 신화를 보고 있는 것이다.

숫자가 말하는 수축 — 141에서 100으로

감정을 걷어내고 편수를 세어보면 그림은 더 냉정하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집계 기준, 국내 방송·OTT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는 2022년 141편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4년 약 100편 안팎으로 30% 넘게 증발했다. 지상파의 수축은 더 가파르다. 방송 편수는 2018년 75편대에서 2023년 32편 수준으로 반토막 났고, 2025년에는 SBS 목요 드라마 시간대가 사라지고 종편 채널들의 비정기 슬롯마저 비었다.

이유는 잔인하리만큼 단순하다. 회당 광고 수익은 3~4억 원인데 회당 제작비는 10~20억 원이다. 한 편을 편성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에서, 방송사가 드라마 대신 값싼 예능으로 빈칸을 메우고 재방송으로 '땜질 편성'을 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산수다. 제작사 사정도 다르지 않다. 글로벌 OTT 의존도가 높아지며 제작사는 지식재산을 넘기고 제작비에 일정 마진만 얹어 받는 '납품업체'로 밀려났고, 주요 스튜디오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로 꺾였다. 화면은 더 화려해졌는데, 그 화면을 만든 회사들의 장부는 더 창백해졌다.

반론, 그리고 그 반론의 빈틈

반론은 가능하다 — 편수가 줄어든 것은 위기가 아니라 거품 빠진 정상화이며, 양보다 질로의 건강한 구조조정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일리가 없지 않다. 난립하던 기획이 정리되고 '될 작품'에 자원이 모이는 것은 성숙의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낙관에는 빈틈이 있다. 구조조정이 '질'을 향한 선별이라면 다행이지만, 2025년 1분기의 수축은 작품성이 아니라 자본력으로 줄을 세우고 있었다. 살아남는 기준은 '얼마나 좋은 이야기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큰 자본과 스타를 끌어올 수 있는가'였다. 그 결과 중소 제작사의 다양한 실험은 가장 먼저 잘려나갔다. 다양성의 멸종을 효율이라 부르는 순간, 산업은 다음 세대의 히트작을 길러낼 씨앗까지 함께 태운다. 올봄의 그 제주 서사조차, 모험을 허락하던 시절의 토양에서 자란 작물이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결론 — 귤이 아니라 과수원을 보라

2025년 1분기의 교훈은 환호와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는 점에 있다. 세계가 한국 드라마에 가장 열광한 분기에, 한국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가장 차갑게 식어 있었다. 출연료가 제작비의 3분의 1을 삼키고, 광고가 제작비의 4분의 1도 못 메우며, 편수가 3년 만에 3분의 1이 사라지는 들판에서, 한 알의 잘 익은 귤은 위로일 수는 있어도 처방일 수는 없다.

진짜 질문은 '올해 어떤 작품이 터졌는가'가 아니라 '이 토양이 다음 작품을 길러낼 수 있는가'여야 한다. 출연료 가이드라인, 수익 분배 구조의 재설계, 지식재산을 제작자에게 돌려주는 모델 — 화제성이 아니라 이 지루한 구조의 문장들이 산업의 봄을 결정한다. 풍년 든 화면에 박수를 보내되, 시선은 말라가는 들판에 두어야 한다. 귤을 세지 말고, 과수원을 보라.

다른 칼럼 — 우리가 보는 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