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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25-Q4
관점

덜 만들고 더 쓴 해
K드라마, 풍요 속의 고사(枯死)

세계가 한국 드라마에 열광한 바로 그 해에, 한국 드라마는 가장 적게 만들어졌다. 2025년 4분기, 업계는 이 역설을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됐다.

KONTENTS INDEX 편집부 · 읽기 4분
서론

역사상 K드라마가 이토록 강했던 적은 없었다. 글로벌 차트 상위권은 한국어 작품으로 채워졌고, 한 편의 화제작은 세계 수십 개국에서 동시에 소비됐다. 그런데 같은 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의 편수는 거꾸로 곤두박질쳤다. 2022년 141편이던 연간 제작 편수는 2023년 123편, 2024년 약 100편을 거쳐 2025년에는 80편 안팎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3년 만에 사실상 반 토막이다.

2025년 4분기, 이 숫자는 더 이상 '경기 탓'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그것은 산업의 구조가 임계점을 지났다는 신호였다. 가장 잘나가는 콘텐츠 산업이 가장 빠르게 만들기를 멈추는 풍경—이 모순이야말로 지난 분기 한국 드라마를 규정한 단 하나의 사건이다.

몸값은 글로벌, 시장은 국내

원인의 핵심은 제작비다. 2019~2024년 공개된 국내 드라마의 평균 제작비는 약 344억 원, 회당 30억 원대에 이르렀고, 회당 20억 원은 이제 '기본값'이 됐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2~4배 수준이다.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은 소수의 스타에게 집중됐다. 주연의 회당 출연료가 10억 원을 넘나든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문제는 이 몸값이 글로벌 흥행을 기준으로 매겨지는데, 그것을 회수할 시장은 여전히 국내라는 점이다. 회당 출연료가 1억 원 안팎으로 알려진 일본과 비교하면 격차는 노골적이다. 넷플릭스 한 곳이 만든 '글로벌 단가'가 시장 전체의 표준이 되어버리자, 그 단가를 감당할 수 없는 제작사와 방송사는 아예 제작 자체를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비용이 흥행을 따라 오르는데, 그 흥행의 과실은 플랫폼이 가져간다.

지상파의 침묵, 슬롯이 사라진 자리

이 충격을 가장 먼저 맞은 곳은 지상파다. 광고 수입이 급감한 가운데 천정부지로 오른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한 방송사들은 편성 슬롯 자체를 비웠다. SBS의 목요 드라마 시간대는 사라졌고, 종편 채널들은 비정기 드라마 슬롯을 올해 통째로 공백으로 남겼다. 빈자리는 재방송과 이른바 '땜질 편성'이 메웠다.

지상파 3사는 3년 연속 적자, 2025년 기준 약 1,174억 원의 영업손실을 안았다. 드라마를 '편성하지 않는 것'이 단기 생존 전략이 된 셈이다. 그러나 슬롯이 사라진다는 것은 신인 작가·배우·연출의 데뷔 무대가 사라진다는 뜻이고, 이는 다음 세대의 공급망을 끊는 일이다. 오늘의 적자 방어가 내일의 인재 고갈을 부른다.

반론과 제도, 그리고 남은 질문

물론 반론은 가능하다. 편수가 줄어든 만큼 작품당 완성도와 글로벌 노출이 높아졌으니,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다작에서 정예로'의 건강한 구조조정이라는 시각이다. 실제로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정예화는 소수의 검증된 스타·제작사에 자본이 더 쏠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양성과 실험, 중소 제작사의 생존 공간은 그만큼 좁아진다. 2025년 7월 12년 만에 전면 개정된 방송·영상 출연 표준계약서—OTT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고, 편집으로 방영되지 않은 분량에도 출연료를 지급하도록 한—는 출연자 권리를 진전시켰지만, 정작 폭주하는 비용 구조 자체를 손대지는 못했다. 제도는 분배의 공정을 말했고, 시장은 여전히 단가의 폭주를 방치했다.

결론

2025년 4분기 한국 드라마가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세계가 사랑하는 산업이 정작 자국에서 가장 적게 생산된다면, 그 성공은 누구의 것인가. 화려한 글로벌 성과 지표 뒤에서 제작 생태계의 모세혈관—지상파 슬롯, 중소 제작사, 신인 무대—은 빠르게 말라가고 있었다.

풍요 속의 고사. 지난 분기는 K드라마가 '얼마나 잘나가는가'가 아니라 '이 성공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나눌 것인가'를 처음으로 정면에서 마주한 시간이었다. 단가의 폭주를 산업 스스로 길들이지 못한다면, 80편이라는 숫자는 바닥이 아니라 통과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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