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비어가고,
트로피는 쌓인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팬데믹의 후유증이 아니라 관객의 영구적 이탈이다. 해외 위상은 사상 최고로 치솟는 사이, 내수 시장은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한국영화를 둘러싼 가장 흔한 위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코로나 후유증이 아직 안 가셨다"이고, 다른 하나는 "요즘 잘 만든 영화가 없어서"다. 둘 다 듣기 편하다. 둘 다 시간이나 작품이 해결해 줄 문제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알리바이는 같은 사실 하나 앞에서 무너진다. 같은 바이러스를 겪은 미국과 유럽의 극장은 이미 2019년의 70~80% 수준을 회복했다는 것.
회복의 시계가 유독 한국에서만 멈춰 있다면, 원인은 바이러스 바깥에 있다. 2026년 1분기 극장 관객은 약 3,190만 명으로 2019년 동기(5,507만)의 58%에 그쳤다. 2025년 상반기 누적은 약 4,249만 명으로 코로나기를 제외하면 2004년 이후 상반기 최저치였다. 이것은 회복이 더딘 시장의 모습이 아니라, 관객이 돌아오지 않기로 결정한 시장의 모습이다.
관객이 극장을 떠난 이유를 영화진흥위원회가 물었을 때, 1위 응답은 작품의 질도 코로나도 아니었다. 관람비 부담(25.1%)이었다. 그럴 만하다. 주말 일반관 티켓은 2019년 1.2만 원에서 3년 연속 인상을 거쳐 현재 1.5만 원이 됐고, 특별관은 2020년 382개에서 2024년 1,152개로 세 배 늘며 객단가를 끌어올렸다. 멀티플렉스 459개 중 449개(97.8%)를 CGV·롯데·메가박스 3사가 쥔 과점 구조 위에서 일어난 일이라, 2024년 시민단체는 티켓값 담합·폭리를 이유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흥미로운 역설은, 가격을 올린 사업자들조차 적자라는 점이다. 메가박스는 5년 연속 적자, 롯데시네마 매출은 -41.4%, 노포 대한극장은 끝내 폐관했다. 가격을 올려도 관객이 더 빠르게 줄어 모두가 지는 게임. 이는 일시적 불황이 아니라, 가격과 신뢰가 동시에 무너진 시장의 전형적 증상이다.
2025년, 한국에서 천만 영화는 0편이었다. 그해 박스오피스 1위는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568만)이 가져갔고, 한국영화 점유율은 역대 최악인 43.7%로 주저앉았다. 한국영화 중 300만을 넘긴 건 '좀비딸'(563만)과 '야당'(337만) 단 두 편뿐이었다.
더 본질적인 붕괴는 정상이 아니라 허리에서 일어났다. 순제작비 30억 이상 상업영화 개봉 편수는 2019년 45편에서 2025년 30편으로 줄었고, 그중 손익분기를 넘긴 건 6편에 불과했다. 235억을 들인 '휴민트'는 손익분기 400만에 198만으로 멈췄다. "2~300만 관객 시장은 사라진 지 오래"라는 현장의 탄식은 과장이 아니다. 천만이라는 대박이 아니면 폭망뿐인 시장에서, 영화 투자는 사실상 복권이 되었다.
허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OTT가 자본과 인력째 들어섰다. 플랫폼 투자가 커질수록 극장 영화의 자본은 말라, "상업적 장르영화조차 투자를 못 받는" 상황이 일상이 됐다. 이창동을 비롯한 감독들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옮겨가고, SBS는 넷플릭스와 6년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인재와 돈이 흐르는 방향이 바뀐 것이다.
역설은 여기서 절정에 이른다. 같은 시기 윤가은의 '세계의 주인'은 한국영화 최초로 토론토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해외에서는 호명되고, 국내에서는 관객을 잃는다. 물론 홀드백 법제화와 1,000억대 펀드 조성 같은 대응책이 논의되지만, 그 실효성에는 의문이 따른다. 이미 떠난 수요를 공급 측 처방으로 되돌릴 수 있느냐는 질문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영화에서 벌어지는 일은 세 개의 구조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이다. 관객 습관의 영구적 이동, 과점 극장의 가격·특별관 진입장벽, 그리고 자본·인력의 OTT 탈출로 인한 중급영화의 공동화. 홀드백도 펀드도 무너진 수요 자체를 복원하지는 못한다. 천만 도박을 부추기는 구조 — 과점 배급, 스크린 몰아주기, 고가 정책 — 를 건드리지 않는 한, 처방은 증상만 늦출 뿐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열어둘 질문은 두 가지다. 극장은 끝내 대중매체이기를 포기하고 '프리미엄 체험재'로 축소되는가. 그리고 '국민 모두가 본 천만 영화'라는 신화는, 이미 끝나 버린 시대의 언어인가. 해외에서는 트로피가 쌓이고 국내에서는 좌석이 비어가는 풍경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한 산업이 박물관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