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시간을 법으로 사들이려는 나라
2월, 한국영화는 '홀드백'이라는 거울 앞에 섰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점화된 6개월 홀드백 논쟁이 2월 내내 영화계를 갈랐다. 그러나 유예기간을 법으로 강제한다 한들, 정작 극장에 걸 영화가 사라진 산업의 공백은 메워지지 않는다. 처방이 아니라 진단이 먼저다.
2026년 2월, 한국영화 산업을 규정한 사건은 어떤 흥행작도, 어떤 천만 영화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 편의 법안이었다. 정확히는,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가 OTT로 넘어가기까지의 유예기간을 국가가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발상, 이른바 6개월 홀드백 법제화를 둘러싼 전선이었다.
불씨는 1월에 던져졌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OTT 등에 다 뺏겨 국내 작품 제작이 아예 안 된다"며 "해외에서는 극장 개봉작을 OTT에서 1년 후에나 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예 그런 규정이 없다"고 했다. 정치가 영화의 시간표를 직접 언급한 순간, 표류하던 논의는 입법으로 급물살을 탔다. 그리고 2월 6일, 국회에서 '한국영화산업 선순환 구조 복원을 위한 홀드백 정책 토론회'가 열리며 그 시간표는 본격적으로 펜대 위에 올랐다.
왜 하필 지금인가. 답은 2025년의 결산표에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 관객 수는 4,358만 명으로 전년 대비 39.0% 급감했고, 매출액은 4,191억 원으로 39.4% 줄었다. 코로나 팬데믹기를 제외하면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천만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는 해였다. 같은 기간 외국영화 관객이 21.0% 늘어 6,251만 명을 기록한 것과 견주면, 침체는 극장 전반이 아니라 '한국영화'라는 콘텐츠에 정확히 꽂혀 있었다.
더 무서운 것은 미래 시점의 공백이다. 2025년까지는 코로나 시기 제작돼 개봉을 미룬 이른바 '창고 영화'가 시장을 떠받쳤지만, 그 재고가 사실상 바닥났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 기준 2026년 개봉이 확정된 한국영화는 한때 다섯 편 안팎으로 거론될 만큼 빈약했다. 2월 극장가가 사극 한 편의 장기 흥행으로 버틴 풍경은, 역설적으로 '걸 영화가 없다'는 위기감의 다른 얼굴이었다.
2월 토론회의 중심에는 결이 다른 두 개정안이 있었다. 한쪽은 홀드백 기간을 '극장 상영 종료 후 6개월'로 법에 못 박는 안, 다른 쪽은 구체적 기간을 대통령령에 위임하는 안이었다.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위반 시 5천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골격은 닮아 있었다. 제작·창작 진영은 환영했다. OTT가 곧 풀린다는 사실이 관객의 발길을 극장에서 거두게 만들고, 그 결과 투자 회수가 무너졌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같은 2월, 정반대의 목소리가 뚜렷했다. 배급 진영은 이 법안이 '홀드백이 아니라 블랙아웃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작품의 규모와 성격, 개봉 시기가 제각각인데 일률적 유예를 강제하면, 작은 영화일수록 판매가 멈춘 '암전 구간'에 갇혀 자금이 더 마른다는 우려였다. 더구나 세계 흐름은 거꾸로다. 미국은 극장-OTT 유예를 3개월에서 45일로, 독일은 6개월에서 4개월로, 프랑스는 길게는 3년이던 창구를 9~17개월대로 좁혀 왔다. 한국만 시계를 반대로 돌리려 한다는 지적이 따라붙었다.
물론 반대편의 항변도 경청할 만하다. 시장의 자율 협약이 수년째 공회전한 현실에서, 강제력 없는 신사협정만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방치라는 것이다. 다만 그 강제력이 5천만 원짜리 과태료라면, 손익분기점이 수백만 관객에 이르는 대작 앞에서 과연 억지력을 가질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결국 2월의 논쟁이 드러낸 것은 수단을 둘러싼 견해차 너머의 더 근본적인 균열이다. 한 시민 인식조사에서 관객의 67.7%가 '비싼 극장 가격'을 관람 망설임의 이유로, 48.1%가 'OTT'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관객은 OTT 때문에만 극장을 떠난 것이 아니라, 비싼 티켓값과 볼 만한 한국영화의 부재라는 복합적 이유로 떠났다는 뜻이다.
홀드백은 '극장의 시간'을 법으로 사들이려는 시도다. 관객이 OTT를 기다리지 못하도록 유예 구간을 늘려, 강제로 극장에 머물게 하려는 설계다. 그러나 시간을 산다고 콘텐츠가 채워지지는 않는다. 텅 빈 라인업, 무너진 투자 펀드, 세 개 멀티플렉스로의 좌석 쏠림이라는 구조가 그대로라면, 6개월의 유예는 빈 상영관의 어둠을 6개월 더 늘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2026년 2월의 한국영화는 그래서 거울 앞에 선 산업이었다. 법안 한 줄이 비춘 것은 OTT라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만들 영화도 투자할 자본도 고갈된 내부의 공동(空洞)이었다. 시간표를 손보기 전에 채워 넣을 무엇이 있어야 한다. 처방을 다투는 2월의 소란은, 정작 진단이 끝나지 않았음을 가장 선명하게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