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줄어든 게 아니라
만들 곳이 무너지고 있다
2026년 4월, 581명의 영화인이 한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이 말한 위기는 흥행 부진이 아니라 영화를 생산하는 토대 그 자체의 붕괴였다. 한국 영화가 마주한 진짜 적은 관객의 무관심이 아니라, 20년간 방치된 수직계열화의 청구서다.
2026년 4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 영화인 581명의 이름이 모였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박중훈을 비롯한 면면이 13개 단체와 함께 '2026년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와 대책'을 들고 나섰다. 이날의 언어는 평소의 호소와 결이 달랐다. 그들은 '침체'라는 단어를 거부했다. 침체는 회복을 전제하지만, 이번에 진단된 것은 영화를 만드는 생산 기지 자체가 파괴되는 체질적 붕괴였다.
숫자가 이 진단을 뒷받침한다. 2025년 한 해 동안 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영화는 30편 미만으로 떨어졌다. 르네상스기에 연 100편을 넘기던 시절과 비교하면 흔적만 남은 셈이다. 같은 해 극장 관객은 1억 600만 명으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2억 2,600만 명의 46%에 그쳤다. 미국이 62%, 유럽이 대체로 75%를 넘기고 일본이 거의 100%를 회복하는 동안, 한국만 절반에서 멈춰 섰다.
회복의 격차는 우연이 아니다. 영화인들이 지목한 원인은 명료했다. 극장과 배급, 제작을 한 몸으로 쥔 수직계열화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세 사업자가 전국 스크린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동시에 계열 배급사와 제작사를 거느린 이 구조는 20년 가까이 견제 없이 굳어졌다.
결과는 스크린 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2025년 12월의 3주 동안, 단 두 편의 대작이 전국 극장 좌석의 85%를 점유했다. 나머지 영화들은 개봉하자마자 화면에서 밀려났고, 갈 곳을 잃은 다양성은 관객을 스트리밍으로 떠밀었다. 한 일본 영화가 1,000만 관객에 6개월이 걸렸을 때 같은 숫자를 31일 만에 통과한 한국 흥행작의 기록은, 성취가 아니라 좌석 몰아주기의 그림자라는 점에서 씁쓸하다.
붕괴는 공급에서 끝나지 않고 수요로 번진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26년 2월 내놓은 소비 동향 조사에서, 관객이 극장을 피하는 이유 1위는 티켓 가격 부담(25.1%)이었고 2위가 '볼 만한 영화가 없다'(21.5%)였다. 두 답은 따로 떨어진 불만이 아니라 하나의 고리다. 대작에 좌석을 몰아주는 구조가 중소 제작의 시도를 죽이고, 다양성이 사라진 라인업이 다시 '볼 영화가 없다'는 이탈을 부른다. 오른 티켓값은 그 빈약한 선택지에 치르는 비용처럼 느껴진다.
악순환의 끝에서 생산 기반이 마른다. 2025년 제작 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약 40% 급감해 3,000억~3,500억 원대로 내려앉았다. 만들 자본이 사라지면 다음 해 라인업이 비고, 빈 라인업은 다시 관객을 떠나보낸다. 영화인들이 '골든타임'을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손쓰지 않으면 회복할 토대 자체가 남지 않는다는 경고다.
이날 제시된 처방은 구조를 겨눴다. 한 멀티플렉스에서 단일 영화의 일일 좌석점유율을 20% 이내로 묶는 스크린 집중 제한, 대기업 배급망에서 독립한 1조 원 규모의 전략 펀드, 제작비 30% 환급과 같은 세제 지원이 핵심이다. 정부도 호응하듯 약 40편 제작을 떠받칠 656억 원 추가 투입과 818억 원 규모 정책펀드를 내놓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소생'이라는 단어를 꺼냈을 만큼 위기 인식은 공유됐다.
다만 처방의 방향을 두고는 균열이 있다. 이른바 '블랙아웃' 우려를 낳은 6개월 홀드백 강제에 대해 한 미디어 법학자는 분명히 반대했다. 관객의 접근을 인위적으로 틀어막는 방식은 본질을 비껴간다는 것이다. 반론도 가능하다. 강제 홀드백이 OTT로의 조기 이탈을 막아 극장 생태계를 보호한다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이날의 다수 의견은, 접근을 막을 게 아니라 스크린 집중을 풀어 상영 기간을 자연스럽게 늘리는 쪽이 홀드백 정상화의 본질에 가깝다는 데 무게를 실었다.
2026년 4월의 한국 영화를 규정한 사건은 어느 작품의 흥행이나 실패가 아니었다. 581명이 한 문장 아래 이름을 모아, 위기의 본질을 '관객이 사라졌다'에서 '만들 곳이 무너진다'로 다시 정의한 그 선언이었다. 진단이 바뀌면 처방도 바뀐다. 가격을 내리고 좋은 영화를 더 만들라는 주문만으로는, 좌석을 독점하는 구조 위에서 어떤 노력도 모래 위의 집이 된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20년간 미뤄온 수직계열화의 청구서를 지금 받아 들 것인가, 아니면 회복할 토대마저 사라진 뒤에 받을 것인가. 4월의 영화인들이 '골든타임'이라 부른 것은, 바로 그 선택이 아직 우리 손에 남아 있다는 마지막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