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이 한국을 잊은 봄,
극장은 야당 하나로 버텼다
2025년 2분기 한국 영화는 두 개의 빈자리로 규정됐다. 4월 칸의 초청 명단에서 사라진 장편 한 편, 그리고 5월 멀티플렉스를 지킨 단 한 편의 중급영화. 풍요의 부재가 아니라 허리의 실종이었다.
2025년 4월 16일, 제78회 칸국제영화제 초청작 명단이 공개됐다. 거기에 한국 장편은 없었다. 경쟁·비경쟁은 물론 감독주간과 비평가주간까지, 공식과 비공식 전 부문에서 한국 장편이 동시에 호명되지 못한 것은 1999년 이후 26년 만의 일이었다. 정유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안경'이 비평가주간에, 허가영 감독의 단편 '첫여름'이 시네파운데이션에 이름을 올린 것이 전부였다. 봉준호·박찬욱·홍상수의 나라가 한 분기 만에 '초청장 0편'의 나라가 됐다.
이 사건이 2분기를 규정하는 이유는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칸의 명단은 2~3년 전 한국이 어떤 영화를 기획하고 누구에게 카메라를 쥐여줬는가를 비추는 거울이다. 2025년 봄, 그 거울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같은 분기, 국내 극장에서도 똑같은 공백이 확인됐다.
업계의 진단은 빠르게 한 곳으로 모였다. 한 영화평론가는 상업영화가 스타 시스템에 기대 '장사가 되는 것'에만 집중하고 독립영화마저 새로운 흐름 대신 안정성을 좇는다며, 지금을 "새로운 도전이 없는 침체 상태"로 규정했다. 핵심어는 '안전한 영화'다. 팬데믹 이후 극장 불황과 투자 위축이 길어지자, 제작 현장은 위험을 감수한 작가적 시도 대신 검증된 장르와 익숙한 얼굴로 회귀했다.
숫자가 이를 뒷받침한다. 대기업 기반 투자·배급사들은 보수적 태도를 거두지 않았고, 기획·개발 단계 자체가 좁아졌다. 그 결과는 양극단만 남은 라인업이다. 한쪽엔 성수기를 겨냥한 소수의 대작, 다른 쪽엔 저예산 독립영화. 사이를 메워야 할 중급영화라는 '허리'가 사라지면서, 칸이 좋아할 법한 '잘 만든 중간 규모의 야심작'을 길러낼 토양 자체가 메말랐다. 칸의 빈 명단은 한국 영화 생태계의 허리가 무너진 자리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국내 극장의 풍경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4월 16일 개봉한 범죄 드라마 '야당'은 5월 5일 손익분기점인 250만 관객을 넘겼고,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는 2015년 '내부자들' 이후 처음으로 주간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2025년 한국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분명한 성취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한 분기 내내 극장을 지탱한 한국 중급영화가 사실상 '야당' 한 편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빈자리는 곧 외화로 채워졌다. 5월 17일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개봉 첫 주말 76만 명을 동원하며 2025년 최고 오프닝을 찍었고,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을 빠르게 장악했다. 한 주 사이 한국영화 점유율이 직전 주 대비 26.4%p나 급락하고 외화가 70%를 넘긴 주도 있었다. 가정의 달 대목, 한국 관객이 본 가장 큰 영화는 한국 영화가 아니었다.
물론 반론이 가능하다. 칸 초청 0편은 한 해의 우연일 뿐, 산업의 사망 진단서가 아니다. 영화제 명단은 소수 작가의 컨디션과 출품 타이밍에 좌우되고, 실제로 박찬욱의 신작은 애초에 칸에 출품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한 분기의 공백을 구조의 붕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반론은 정확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을 되돌려준다. 왜 하필 그 분기에, 영화제 명단과 박스오피스라는 전혀 다른 두 지표가 똑같은 공백을 가리켰는가. 우연 한 번은 노이즈지만, 같은 신호가 두 곳에서 동시에 울리면 그것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작가적 야심이 들어설 자리도, 그것을 길러낼 중급 시장의 토양도 함께 비어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2025년 2분기를 규정한 사건은 흥행 참사도, 특정 대작의 몰락도 아니었다. 그것은 '없음'이었다. 칸의 명단에 없던 한국 장편, 5월 극장을 지킬 두 번째 야당의 부재, 그 둘 사이를 잇는 허리의 실종. 풍년도 흉년도 아닌, 씨앗을 덜 뿌린 봄의 결과가 한 분기에 압축돼 드러났다.
위기의 본질은 관객이 떠난 데 있지 않다. 떠난 관객을 다시 부를 '모험적인 중간 규모의 한 편'을 더는 기획하지 못하는 데 있다. 가장 안전한 선택이 가장 위험한 전략이 되는 역설. 한국 영화가 다음 봄 칸의 명단과 5월의 극장을 동시에 되찾으려면, 결국 비어 있던 그 허리부터 다시 채워야 한다. 2분기는 그 청구서가 도착한 분기였다.